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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쓰레기 버리지 말거라. 양심도 없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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浮渶浪
부영랑

1100세|185cm

​외관 나이 20대 중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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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바닷속을 닮은 청색 머리칼이 길게 내려와 너울거린다. 희게 퇴색된 눈은 끄트머리가 올라간 눈꺼풀과 속눈썹에 한 번, 눈을 뒤덮는 반투명한 검은 천에 한 번 가리워져 잘 보이지 않는다. 무뚝뚝한 낯은 빛을 차단하기 위한 눈가리개 탓에 더욱 엄격해 보인다. 입술은 색이 짙지 않은 편이나 피부가 창백하고 푸른 기가 돌아 상대적으로 도드라졌다. 우락부락하진 않아도 큰 체격, 단단한 어깨나 긴 팔다리와 고고하게 치들고 있는 고개와 맞물려 무척 깐깐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실제로 미간을 종종 구기며 호통을 치니 그 인상은 굳어질 수밖에 없다.

 

옷자락이 몹시 치렁치렁하여 바닥에 닿을 정도였으나 이상하게도 더러워지지 않는다. 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와도 보송보송한 것이 특수한 처리가 되어있는 듯했다. 긴 의복 허리춤에는 구슬이 달린 노리개가 묶여 있고 왼손 약지에 얇고 소박한 옥반지 한 개가 끼워져 있다. 그 외에는 특별히 장신구를 사용하지 않아 담백한 차림이다. 만일 눈을 가리고 있지 않았다면 어디 부호의 자제인 것처럼 보일 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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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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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

서서히 차오르는 밀물이 꽉 차는 것처럼 치유의 물결이 서서히 발목을 적신다.

 

단번에 체력을 회복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체력과 상처를 치유해주는 파도와 단비를 내린다. 실제 바다처럼 짠기도 있고 물에 젖기도 하지만 부영랑의 손짓 한 번에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지속적인 치유력이 그의 환력 만조의 대표격이지만, 힘을 쓴다면 집채만한 파도가 몰려오는 능력 또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파도에 아군이 맞는다면 구름이 스치는 것처럼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싸며 체력을 대폭 회복해주고, 적군이 맞는다면 물길에 휩쓸리도록 하는 치명적인 공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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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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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어울리지 않게 퍽 귀여운 장신구가 하나 있다.

투명한 유리구슬 안에 붉은색 꽃 한 송이가 들어있는 장식이 달려있는 노리개인데, 이 유리구슬이 그의 보제 수중지화水中之火였다. 자세히 살펴보거나 만져본다면 이 구슬은 유리가 아니라 물방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무척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뜨거운 열기를 가진 꽃을 물방울로 가둔 모양새. 부영랑의 힘이 강해질수록 꽃잎은 더 붉은색을 띤다. 아군에게 치유의 파도를 보낼 때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건 이 보제의 온기 탓일지도 몰랐다.

평소에는 장신구로 부영랑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다, 먼 곳에 있는 이에게 말을 전달할 때에는 작은 새 모양으로 변하여 전서구로써 활동하기도 한다. 본체는 물방울 안의 꽃이며, 물로 만들어진 생물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나이 들지 않는다. 물론, 말을 전달하는 것 외에 생물로서의 능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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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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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고 가끔 불같은, 결벽증, 약한 것을 가여워하는

 

첫인상 그대로의 성격. 무뚝뚝한 얼굴에 걸맞게 엄격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라, 방정맞게 굴지 마라, 흐른 세월답게 굴어라.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는 말씨가 사람에 따라 몹시 오만불손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불같은 성격을 감추려 들 줄 몰랐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해야 했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냈다. 심해에서 오랫동안 산 탓에 상냥하고 다정한 대화는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던 탓도 있겠으나… 꼬장꼬장한 본래 성정도 한 몫 할 것이다.

 

그를 더 까다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결벽증이었다. 심해의 깨끗하고 차가운 물에서 사는 부영랑은 지저분한 것을 몹시도 싫어했다. 누군가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거나 아무 데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본다면 크게 혀를 차며 나무랄 정도였다. (직접 손을 대진 않는다. 더러워지므로…) 그래서인지 그의 의복도, 몸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게 깔끔했다. 아무렇게나 흐트러뜨린 머리카락이나 의복인 것처럼 보여도 잘 보면 담백하고 정갈한 것이 상당히 신경 쓴 모양이었다. 아무튼, 부영랑은 이 특수한 성격 탓에 다른 존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마저 꺼렸다. 제 성질을 감당할 수 있는 요괴나 신령도 몇 없는데다 스스로 굳이 다른 이와 친밀한 사이로 지낼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부영랑은 약한 것들을 가여워하고 돌보았다. 깊은 바닷속에서 알고 지내던 괴이라면 알 테지만, 그는 작은 바다 생물부터 커다란 것들까지 두루 돌보았다. 길을 잘못 든 돌고래에게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는 물길을 틔워주고, 산란기를 맞은 물고기들에겐 적절한 온도의 바닷물을 보내주어 무사히 알을 낳도록 한다. 인간들까지 돌보게 된 건 아주 최근이지만, 그 또한 신령이나 요괴만큼 강하지 않고 수명도 짧으니 불쌍히 여기는 듯했다. 이토록 단호한 이에게 작은 것들을 가여이 여기는 마음이 남아있다니, 혹 천성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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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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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부영랑浮渶浪

 

다소 우스운 이름이다.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물을 뜻하는 글자가 들어간 글자를 저 좋을 대로 조합한 듯한 모양새였다. 실제로, ‘부영랑’이라는 이름은 별명에 가까운 호칭이었다. 어떤 간 큰 인간이 체격이 큰 남성의 모습을 한 요괴에게 이런 호를 붙일 수 있었을까. 실상은 아래와 같다.

 

부영랑이 세상에 알려진 건 고작 백 해 가량 전이다. 그는 명엽의 가장 깊은 심해에서 비롯된 ‘괴이’였다. 뭍으로 나오지 않으니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몰랐고 그저 ‘바다’ 그 자체인 줄로만 생각했다. 그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어 신앙을 받을 일 없는 그는 심해 생물과 바닷물을 다루는 요괴였다. 그가 손을 휘둘러 파도를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바다의 신이 노하셨다며 제사를 올렸는데, 공덕을 받는 대상은 그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더 널리 알려진 바다의 신령들이었다. 따라서 신령이 되거나 비승할 일이 없었으나 부영랑은 낯을 몹시 가리고 오감이 예민하여 알려지지 않고 지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한다.

 

좌우지간, 그런 그가 뭍으로 올라온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비승을 앞둔 신령이 그에게 밤하늘이 무척 아름다우니 한 번쯤 볼만하다 한 것이 이유였거나, 그러다 육지의 공기 냄새조차 잊겠다 핀잔을 준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날은 부영랑이 바닷가로 올라온 날이었고, 아주 작은 빛에도 민감해 불투명한 천으로 눈을 가린 그에게도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 시선을 끌었다. 그는 명엽의 작은 마을에 사는 여성이었는데 해변가를 거닐며 조개껍데기를 줍다 바다에서 스르르 올라온 부영랑을 보고 깜짝 놀라 까무러치고 말았다. 황당했던 부영랑은 그 약한 인간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파도를 막아주었는데 깨어난 인간이 몹시 고마워했다. 그것을 계기로(?) 부영랑은 매일같이 심약한 그 사람을 보러 바닷가로 올라왔고 둘은 빠르게 가까워져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약식으로 혼례를 올려 슬하에 아들까지 하나를 둔 부부는 평범하게 살았으나 몸이 약했던 부인은 마수의 침입에 목숨을 잃는다. 부영랑은 정인을 잃은 슬픔에 석 달 동안 비를 내리다 황룡의 소집에 응하여 마수를 토벌하기 위해 호중천이 되었다. 부영랑은 인간이 몹시 약한 존재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수틀리면 파도를 치고 폭우를 내리게 하던 것도 멈추고, 제 부인의 고향이었던 마을의 번영을 위해 곡옥까지 사용했다. 그런 그에게 감사하며 사람들은 그를 무어라 부를지 물었고, 귀찮았던 부영랑 대신 그의 아들이 ‘부영랑’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이것이 백 해 전의 이야기였다. 명엽 한구석에 알려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터였다.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고 싶지 않은 부영랑은 부인이 죽은 후에는 명엽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했는데, 뭍과 바다를 오가며 살고 있는 제 아들 탓에 하는 수 없이 종종 뭍으로 올라오곤 한다. 사람들은 바다 요괴인 그를 기이하게 여겼으나 마을에 번영을 가져다 준 요괴를 신성시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하니, 그가 신령이 되는 날도 머지 않은 듯하다.

 

환력 만조滿潮와 보제 수중지화水中之火

 

혼돈이 생겨난 후 그가 처음으로 마수와 대적한 것은 백 해 전 부인을 공격한 마수를 무찔렀을 때였다. 그 때에 남은 상흔으로 황룡에게 환력을 부여받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환력 만조滿潮였다. 이따금 끓는 물처럼 불같은 성정을 보여주는 그였건만 산 것을 치유하는 능력이 나타난 것은 가까운 이의 죽음 탓일 것이다. 서서히 차오르는 바닷물처럼 그의 치유 능력은 옷자락에 물이 스미듯 부드럽고 느리게 작용했다. 그러나 힘을 쏟아 부으면 강한 파도가 몰아치듯 하니 ‘만조’가 ‘부영랑’ 그 자체와도 같았다. 뒤늦게 환력을 갖게 된 것이 후회스러웠던 부영랑이 힘 없는 인간들을 돌보게 된 건 속죄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수중지화水中之火 또한 부영랑의 성정을 대변하는 모습의 보제였다. 보제 수중지화는 동그란 구슬 모양의 물방울 안에 뜨겁고 빨간 꽃 한 송이가 들어 있는 형태였다. 그 뜨거운 꽃송이 덕분에 구슬은 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부영랑은 이 보제에 매듭을 달아 노리개로 차고 다닐 수 있도록 했는데, 마치 유리같은 질감의 구슬이지만 세게 누르면 옴폭 들어가는 것이 액체를 부영랑의 능력으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옅은 색 꽃잎이었던 것이 점점 색이 짙어지니 보제의 힘이 강해질수록 붉은 빛을 띄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전서구 형태로 변할 때에는 정수리에 붉은색 털을 가진 참새의 모습이 된다. 보제의 본체는 물방울 안의 꽃이다.

 

 

바다, 그리고 육지에서의 삶

 

부영랑의 거처는 심해 한구석이다. 아주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부유하거나 심해 생물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따금 수면 가까이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길을 잘못 든 바다생물을 인도하거나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내보내러 올 때 정도였다. 다른 바다의 신령이나 요괴와 교류를 하긴 하였으나 그 빈도가 적고, 인간과 교류하는 것은 더욱 없는 일이다. 차라리 바다생물들과 부대끼고 지내는 것이 낫지, 지저분하고 자연을 아낄 줄 모르는 인간을 싫어하는 것에 가까웠다. (근 백 해 동안은 본의아니게 인간을 돌보며 살았으나 부영랑의 성정에 맞는 일은 아니었다… .) 그는 인간이 약하고 금방 죽는 존재만 아니었어도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아들은 인간과 요괴의 혼혈로, 자신처럼 바다에 살 수도 있었고 인간 사회에 섞여 살 수도 있었다. 두 곳 모두 좋아하는 아이 탓에 부영랑은 반강제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삶을 지내는 중이다.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었던 그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식사를 시작했고(처음에는 무척 역했다고 한다.) 아이가 인간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도록 하기 위해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는 등, 혼례를 올리기 전이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와서야 아이 또한 백 살이 넘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대하니 심해에 콕 박혀 살 수 있을리 만무했다. 

 

호 :: 깨끗한 물, 작은 짐승, 과일(그나마, 먹을 것 중에.)

불호 :: 더러운 모든 것, 식사, 시끄러운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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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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