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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 또한 삶이 아니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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晨柳
신류

1053세|178cm

​외관 나이 20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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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연둣빛 어린잎을 닮았다. 머리 위에는 나뭇가지와 열매, 꽃 그리고 긴 천 따위가 얽힌 둥근 관을 쓰고 있고 머리카락 사이에는 드문드문 길게 자란 풀 줄기며 들꽃이 섞여 있어 그가 가진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보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은 애써 정리할 생각이 없는지 손을 빗 삼아 슥슥 빗어내리는 것이 전부인 모양. 눈을 찌를 듯 길어진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으며 눈두덩을 가리지 않을 만큼 슬쩍 넘겨 정리해두었다. 새초롬하게 올라간 눈꼬리를 가졌지만 완만하게 떨어지는 눈썹이며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밝은 노란색의 눈 덕분에 유순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가볍게 떼는 걸음걸이는 명랑하고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마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상대를 향한 단단한 호의가 담겨있다. 

 

 그는 품이 큰 옷의 앞섶을 여미고 허리를 동여맨 가벼운 차림새를 하고 있다. 밑단이 트여 나풀거리는 옷자락 사이로 맨 다리가 보이고 팔을 들면 흘러내리는 소매 따위가 불편할 법도 했지만 개의치 않는 기색이다. 이따금 누군가가 주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이 지나치게 단출한 옷차림은 선물 받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니는 바람에 버릇이 된 모양. 때때로 멀리 외출할 일이 생기면 장포를 한 벌 걸치고 수수한 가죽신을 신었다. 장포 아래에는 여전히 가벼운 옷을 입었지만 옆머리에 매단 붉은 실과 오른 손목에 색색의 구슬을 꿴 팔찌를 하고 다녀 언뜻 전보다 화려해진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는 한다.

 

 여덟 번째 호중천 소집령에 응하여 100년 전 어느 때처럼 싱그러운 모습과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나타났지만 부쩍 수척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 아닐 것이다. 밝은 얼굴 사이로 때때로 피로가 스쳤으며 부쩍 걱정이 늘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말을 걸면 미소로 화답했다. 마치 자신은 무탈했노라고 전하는 것처럼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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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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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의 공명

본디 푸르고 울창한 녹지를 온 몸으로 받아들인 것 처럼 식물을 키워낼 수 있었다.

 

식물들은 신류의 의지에 따라 어디든 가리지 않고 성장하며, 여타 식물들과 다를 바 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능력으로 키워낸 식물들의 꽃과 열매는 먹을 수 있으며 탈이 난다거나 하는 것 없이 그저 평범하게 배를 채우고 약으로 달여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받은 환력은 이른바 약수藥水였다.

 환력을 받은 후 신류가 길러낸 식물들에게 다소 변화가 생겼다. 외관은 평범했으나 꽃과 잎을 따 즙을 내 상처에 문지르거나 열매를 먹으면 상처가 아물고 고통이 줄었다. 환력을 담아둘 그릇으로 식물을 선택한 셈. 지난 100년간 마수와 대적하게 되었을 때 더 빠르고 수월하게 환력을 사용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물의 형태로 운용하는 일이 잦아졌다. 위급 시에는 냅다 상처에 끼얹어 버리는 것이 효과가 좋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약을 과하게 쓰면 독이 된다. 하물며 밭에 뿌리는 비료조차도 과하면 작물을 말려 죽인다. 무엇이든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듯 신류는 환력을 똘똘 뭉쳐댄 것을 이용해 적의를 드러냈다. 식물을 그릇으로 쓸 때도 있고 그것조차 쓸모없다 느낄 때면 상대를 향해 환력이 과하게 농축된 물 세례를 퍼부었다. 병과 액을 씻는 것이 아닌 멀쩡한 기운까지 함께 쓸려 내려가 오히려 상처를 입히는 것. 이런 방식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지만 그가 수호하는 숲과 마을을 위해 그 나름대로 고심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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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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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 곁에 떨어져 있던 손가락 한 마디 만한 푸르스름한 옥.

전체에 퍼진 얼룩덜룩한 무늬가 신묘한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으며 신류는 그것을 가락지로 만들어 오른쪽 중지 손가락에 늘 끼우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옷차림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옥이 달린 노리개의 모양으로 바꿔 달고 다녔지만 익숙하지 않았는지 금세 다시 고리 모양을 만들어 손가락에 끼웠다고. 여담이지만 이후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옥 노리개를 선물 받았고 조금 민망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의 보제가 귀여운 참새가 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보제를 참새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옥 덩어리가 날 수 있을리 만무하였지만 100년 동안 씨름한 결과 어떻게든 날갯짓 비슷하게 해낼 수 있게 되었다나. 멀리까지 날아가지는 못하지만 신류의 주위를 맴돌 수는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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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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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다정하게 건네는 인사와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 가벼운 몸짓. 온화하고 사근사근한 말씨에는 상대를 향한 친절이 묻어난다. 타고난 면이 이러한 것인지 그저 습관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에게 있어서 이런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에게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른 존재를 대할 때는 마주 바라보되 지나치게 가깝지 않은 자리에 서서 친해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고는 한다. 덕분에 종종 마을에서 그와 마주쳤던 마을 사람들은 신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퍽 기꺼워했다.

 

 이따금 나긋나긋한 목소리에서 단호한 기색이 느껴진다. 섣부르게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자신이 굳게 세운 다짐에 있어서는 떳떳할 수 있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한 번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그가 가진 신앙의 영향인지 안전과 번영에 관한 문제는 집요하리만큼 신경을 쓰고는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떠나는 누군가를 곁에 잡아두는 성미는 아니었기에 설령 그가 위험해진다고 해도 그저 걱정과 함께 배웅해 줄 뿐 상대의 결정을 아주 틀어막지는 못했다. 그는 견고하지만 타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낮은 담장 같은 성격이었다.

 

 그는 눈에 담는 풍경이 생경할수록 눈빛이 반짝이고는 했다. 숲을 터전으로 삼았기에 숲이 아닌 다른 곳을 궁금해했고, 그렇다고 훌쩍 떠나기엔 정든 숲과 마을을 둘러보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서 처음 보는 들꽃이 그의 숲에서 꽃을 피우고 다른 곳에서 건너온 짐승을 발견하면 온종일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고착된 생활 속에서 마주한 다른 지역의 흔적은 자연스럽게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든 이들이 주는 애정과 신의를 좋아했다. 그래서 신류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신단에 올려두면서 안녕을 빌었던 물건을 모아두는 것을 즐겼다. 종종 다른 마을에서 넘어온 이들이 두고 간 것들도 섞여 있어 제법 모으는 재미가 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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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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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탄생

 앙상한 나뭇가지와 누렇게 말라가는 풀. 예사롭지 않은 기근 속에서 한 요괴가 눈을 떴다. 곁에는 작은 옥 한 덩어리가 떨어져 있었으니 자연히 그 옥의 주인이 되었다. 서늘한 새벽공기와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듯한 고요함 속에서 존재를 곱씹기를 사흘. 떠오르는 태양을 등불 삼아 바닥을 보인 계곡과 나무 밑둥만 듬성듬성 남아있는 숲길을 둘러보기를 사흘. 길을 따라 도착한 숲 어귀에 있는 나무와 나무가 굽어보는 곳에 자리잡은 마을을 바라보는 것을 사흘. 그는 태어난 지 꼭 10일 째 되는 날, 처음 눈을 떴던 곳으로 돌아와 옥을 쥐고 마른 땅에 새싹을 틔워냈다. 

 

처음 들어준 소원

 그는 숲을 돌아다니며 대지를 녹빛으로 바꾸고 달 아래에서 느릿느릿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높은 가지에 올라 앉아 개중 그나마 큰 나무 앞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을 조용히 지켜보고는 했다. 무엇을 위하고 있으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어찌 이리 나무에 대고 절박하게 비는지. 가지각색의 바람 끝에 날이 저물고 그도 숲으로 돌아가려는 그 때 숲에서 나온 어린 남매가 빈 광주리를 들고 나무 앞에 섰다. 좀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누이가 나무 앞 작은 돌부리에 살구 씨를 두어개 내려두고 손을 모은 모습을 보았다. 배가 고파서 나무 열매를 따러 왔는데 나무 열매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남매가 빈 광주리를 들고 돌아간 그 날 새벽에는 마을 어귀에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가 열린 두 그루의 살구 나무가 자랐다.

 

마을 어귀의 신령

 남매가 두고 간 두 개의 살구 씨앗이 두 그루의 살구 나무가 되었다는 일화는 마을 전체로 퍼졌다. 새벽에 숲을 찾았다가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며 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도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목격한 때와 언뜻 본 그의 외모를 본따서 ‘달아이’ 또는 ‘새벽녘의 버들’이라고 불렀다. 남매가 살구 씨를 두었다던 나무의 앞에 편평한 돌을 두어 저마다 성의를 표했으며 고개를 넘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는 나무에 절을 하며 무사히 고개를 넘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안녕을 빌었다. 그는 숲을 돌아다니며 꽃이며 나무를 길러냈고 마을 사람들은 기도를 한 다음 날 숲에서 필요한 것을 찾아 가져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어린 남매가 성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꾸리고 그를 처음 본 이가 머리가 허연 노인이 되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령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남매의 소원을 위해 길렀던 살구나무가 인연이 되어 그의 신당은 마을 어귀 살구나무 근처에 세워졌다. 살구씨를 두었던 나무 앞에는 신단이 놓여졌고 그 나무는 신목이 되었다. 달아이보다는 새벽 버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것이 이어져 신당과 신단에는 글을 아는 이의 도움을 받아 ‘신류晨柳’라는 글자를 새겼다. 그는 그것이 제법 마음에 들어 ‘신류’를 자신의 호로 삼았다. 신당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단칸방같은 모양새였고 이따금 내리는 비를 피할 곳이 없으면 쉬어가는 쉼터가 되었다. 신류의 말을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나선 이도 있었지만 그것은 신류가 내키지 않아 거절했다. 마을에 문제가 생기면 찾아와도 좋다는 말을 남겨둔 채 신류는 숲 속에 자신의 거처를 다듬기 시작했다.

 

마수가 할퀸 자국

 그가 태어난지 50해 하고도 몇년은 족히 더 지난 어느날, 평화롭던 마을에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류는 이변을 감지하여 거처에서 뛰어나왔고 처음 보는 괴이한 것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었다. 급히 처치하여 마을을 돌보았고 신류는 신당에 머물며 한 동안 사체의 흔적도 남지 않은 기괴한 것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예의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류의 힘으로 처치하기 버거운 것들이 늘어갔다. 상처를 입는 횟수가 늘었고 피해를 입는 사람도 늘어나 끝내 신류가 바닥난 신력을 긁어모아 겨우 사태를 정리하는 지경이 되었다. 산골 마을의 참사로 살아남은 사람은 열명이 채 되지 않았고 신류는 신앙을 모조리 잃고 요괴가 되었다. 

 

환력과 호중천.

 신류가 회복을 위해 거처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자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은 인근 마을로 이주하여 목숨을 부지했고 신류의 신단과 신당은 방치되어 낡아갔다. 신류의 호는 빠르게 잊혔고 그는 요괴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회복에 집중했다. 몸을 수복한 후에도 그는 거처에 머물며 힘을 모으고 숲을 가꾸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마수를 상대하며 입은 상흔을 증표로 삼아 황룡의 힘을 내려받게 되었을 때는 의아함을 드러냈는데 그가 느끼기엔 자신의 몸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환력을 내려준다니 달갑게 받았지만 그는 내심 찝찝한 느낌이 들어 자신의 힘을 모으는 것에 더욱 신경을 썼다. 신류는 이리저리 환력을 사용해 보았고 그 영향으로 숲에는 치유를 돕는 신묘한 식물이 자라나게 되었다. 우연히 신류가 머무는 숲을 찾아왔던 이들에 의해 인적 드문 숲에서 신통한 약초가 자란다는 말이 알음알음 퍼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숲을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 낡은 신당이 다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신류가 다시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가 족히 350해를 넘게 살고 있던 때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호중천 소집령이 내려졌다. 

 첫 번째 호중천에서는 낙화라는 개인적인 고배를 마셨다. 세상 나들이를 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그 덕에 신류는 다시 거처에 돌아와 꼼짝없이 몸을 회복해야 했다. 어느 정도 편히 움직일만해지자 그는 다시 달 아래에서 춤을 추고 오가는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모으며 살았다. 힘이 어느 정도 모인 어느 날엔 자신의 몸 안에 요력이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환력을 받은 지 한참 지나고서야 그것이 상흔인 줄 알았다.

 

다시 신령으로

 그는 신앙에 큰 미련이 없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차츰 그의 신단에 물건이 쌓여갔고 몇몇 사람들은 이주하여 황폐한 마을을 재건하며 오가는 길목이 안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약초가 많이 난다는 소리에 아예 의약방을 차린 이들도 있었다. 100년간 마을은 번영했고 신당에서 그의 호를 찾아내어 그를 불러냈다. 이름이 없던 마을에 약리藥里라는 이름도 생겼다. 신류는 다시 사람들에게 손을 보태었고 그는 100년이 지난 어느 날 다시 신령이 되었다. 

 그는 이후로 줄곧 신령으로 지냈다. 숲과 거처에 머물며 술을 담그고 꽃잎과 잎을 말려 찻잎을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오밤중에 혼자 춤을 추고는 했으며 숲을 돌아다니며 식물을 길렀다. 마을을 돌보는 일이 줄었지만 이따금 신단의 물건들을 가져가고 염원을 이뤄주고는 했다. 다른 지역으로 다니는 일이 드물어 찾아오지 않으면 만나기 힘든 데다가 거처를 꽁꽁 숨겨둬서 신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가 이곳에 살고 있는 줄도 모르는 일이 다반사.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 사람들을 돕는 것을 빼면 눈에 띄는 활동도 없는 편이다.

 마주칠 때마다 늘 맨발에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그를 의식한 마을 사람들이 새 옷을 지어 그의 신단에 올려둔 적이 있었다. 이후 신류가 선물 받은 옷을 입고 나타났다는 목격담이 이어지자 약리에서는 해마다 한 번씩 새 옷과 신발을 지어 신단에 올려 두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이따금 신류는 마을 축제에 내려와 축제 구경을 하고 갔으며 흥이 나면 다니던 길의 작물을 길러두고 가고는 했다. 덕분에 그가 축제 구경을 위해 내려온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돌아 매년 축제에 들러주십사 비는 이들도 생겼다고. 

 

 100년간의 이야기.

 그는 호중천에서 돌아온 이후 동쪽의 바다, 서쪽의 숲과 초원, 남쪽의 사막, 북쪽의 설원과 설산 그리고 중앙을 오가며 세상구경을 다녔다. 근심 걱정 없는 태평성대와 같이 그의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만남을 즐거워했고 기념품 삼아 잡동사니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 창현 곳곳을 쏘다녀도 그는 꾸준히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왔기에 여전히 신령이었다. 

 창현 내의 이변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30여 년째. 그가 머무는 숲에도 기어이 일이 일어났다. 그가 힘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초목이 새순을 내지 않았고 땅에 심은 씨앗은 싹이 트지 않았다. 해가 갈수록 모종은 고사하고 캐 먹을 풀뿌리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 이어졌다. 위기감을 느낀 신류는 화관도 벗고 몸에 자란 푸성귀도 모조리 거두며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힘을 아꼈다. 실로 기이한 나날이 이어졌다.

 ‘연청으로 갈 것이니? 간다면 도와줄게.’ 결국 그의 입에서 무언가의 선언이 떨어졌다. 전보다 먹을 식량도 부족해졌는데 들짐승까지 기승을 부리니 수 년을 고된 살림을 살며 버텨온 이들도 이주를 택했다. 한두 명이 이주를 희망하자 눈치를 보고 고민하던 이들도 결단을 내려 연청으로 떠나겠노라는 의지를 보였다. 신류는 연청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가진 힘을 일부 털어 가는 길에 먹을 식량을 마련해 주었고, 그럼에도 마을에 남은 이들을 위해 텃밭을 일굴 수 있도록 작물을 길러주었다. 사람들을 도와 목책을 세우고 작물이 자라는 동안 당장 입에 풀칠할 수 있을 만한 식량을 제공했다. 한차례 행렬이 빠져나갔음에도 마을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남아있었고 인간들의 그들의 터전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을은 어려운 형편임에도 여전히 그에게 매년 자그마한 선물을 보냈다. 수를 놓은 옷과 가죽신 대신 짚으로 만든 인형이나 자투리 헝겊을 모아 만든 손수건, 끈을 매듭지어 만든 장신구 따위였다. 신류는 그것을 더없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천령 1473년, 여덟 번째 호중천이 소집되었다. 신류는 가장 깨끗한 옷과 신을 골라 들고 마을에 남은 이들에게 부디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무사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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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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