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디 구린 냄새가 나지 않아? ”


菩提
보리
130세|173cm
외관 나이 20대 초반



어깨를 덮어 등허리까지 닿는 북실북실한 백발. 정확히는 누런 빛이 감도는 회색에 가깝다. 타고난 건지 결도 썩 좋지 않았고 보는 상대가 건조하다 느껴질 정도로 퍼석퍼석하다. 정전기 때문에 머리가 공중에 붕 뜬 느낌도 주었다. 덥수룩한 앞머리는 사나운 눈매와 샛노란 눈을 가렸고 드러나는 건 코밑이 전부다. 아주 예전부터 그랬으니 그의 맨얼굴을 아는 이도 썩 많지 않았다. 하얀 피부에 항상 설렁설렁 웃는 입꼬리. 부드러운 분위기로 유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체구가 아주 큰 편은 아니긴 해도 근육량이 있어 보기보다 옹골차고 무겁다. 평소엔 움직이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고 농땡이만 부리려는 거 같지만, 드러나는 손과 발, 단단한 팔과 다리를 보면 굳은 살과 훈련 중 생긴 상처 등이 눈에 띄기도 한다. 윗옷은 민소매에 발목을 감싼 긴 바지를 입고 있으며, 신발은 신지 않는다.
양 옆머리에 달린 귀는 아래로 축 처진 형태여서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흐물흐물 처진 꼬리는 언제나 좌우로 느릿하게 흔들리고 있다. 어찌나 흐물거리는지 바지나 웃옷에 감추면 거의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애써 자신의 꼬리를 감출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환력


살식견 煞食犬
하얗고 긴 털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대한 개 환수.
마수를 뜯어먹고 멸하는 순수한 힘을 가진 존재.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은 그림자를 찢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두 눈은 오로지 목표물을 찢어발긴다. 빠른 발놀림은 휘몰아치는 바람과도 같아 움직임을 육안으로 쫓기 어려울 지경이다. 본디 보리가 가진 요력을 증폭시킨 환력으로, 집채만한 크기의 요괴는 흡수하는 혼돈의 힘이 커질수록 오감이 예민해지며, 마수의 흔적을 찾고 쉽게 그 존재를 발견한다. 이를 동화라고 표현하는데, 동화되는 정도가 심화되면 속에 쌓인 마수의 힘을 토해내야 한다. 신체를 정화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그날 내내 배탈에 시달린다. 그 외의 부작용은 없다.




보제


보리의 보제는 단순한 봉의 형태를 하고 있다.
대요괴 강석견鋼石 아래에서 수련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목줄이었다고 한다. 요력과 환력으로 모습을 바꿀 때마다 보제의 형태 역시 바뀌며, 대개 전투에 유용한 무기로 변화한다. 마수를 토벌할수록 봉의 경도가 단단해지며, 밝은 상아색으로 변질된다.




성격


유유자적 ㅣ 게으른? ㅣ 이성적인 ㅣ 기본적 거리감 ㅣ 속을 알 수 없는
꼿꼿하지 못한 자세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눈, 여유가 가득한 올라가 있는 입꼬리. 덜렁거릴 것 같은데 섬세하고, 농땡이만 부릴 것 같은데 할 건 다 하는 놈. 그가 단순 '게으른 요괴'처럼 보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억지를 부려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남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게 일과였다. 스승 앞에서도 나몰라라 낚시를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뻔뻔한 면모도 있었다. 두 번째로, 그는 움직이는 시간과 움직이지 않는 시간을 철저하게 구분했다. 즉, 효율적인 움직임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인내심과 집중력이 높으니 가능한 일이겠다마는, 그가 풀밭에 누워 느긋하게 꽃을 감상하고 있을 때 아무 용건 없이 그의 한가로운 시간을 방해한다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보리는 만인에게 똑같이 친절했다. 고집을 부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하며 섬세하기까지 해 상대를 파악하는 데에도 기민했다. 되려 상대를 보다 쉽게 파악하니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그의 속에 분노와 화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을 억누르고 자제하는 법을 잘 알았다. 하나 개의 본능이 어디 가겠는가. 한 번 목표로 한 것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건 기본이요, 보기보다 경계심이 뚜렷했으며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싸우는 도중에 흥분할 때도 있어 중간에 멈추지를 못해 남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이런 개 같은 성질만 빼면, 보리는 하루종일 낚시나 하는 한가로운 노인네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기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마수 토벌의 증표인 곡옥을 손에 넣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요괴가 된 자 강석견이 존재하였으니, 서쪽 초원에 자리 잡은 그의 밑으로 정처없이 떠돌던 네 마리의 개 요괴가 제자로서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하얗고 까만, 누렇고 잿물을 끼얹은 듯한 색색깔의 강아지들은 다음에 있을 황룡의 부름을 기다리며 요력을 단련하고 마수를 상대할 채비를 갖추었다. 보리는 네 마리의 개들 중 하얀 털을 가진 어린 요괴로, 영 투지가 없어 대요괴 강석견이 가장 골치 아프다고 생각한 제자였다. 그래서, 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면…
서부의 초아, 주인을 지키다 죽은 개의 백골에서 태어난 존재. 마수가 휩쓸고 지나가 잿더미밖에 남지 않은 마을에 사랑 받지 못하고 그저 의무로서 짧은 생을 마감한 미물의 거름에서 탄생하였으니, 태초부터 주인을 섬기지 못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동등한 위치의 가족을 찾는 게 운명이었으리라. …라고는 하지만, 보리 자신은 본인의 기원에 대해 큰 고찰은 않는 듯했다.
태어난 이래로 약 30년 정도는 개 요괴답게 발바리 같은 개의 모습으로 지내다 대요괴의 아래로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인간의 모습도 나름대로 익숙해진 편. 인간의 손길이 닿았던 자연인지라 자연스럽게 터득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다른 신령이나 요괴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라면 대부분 네발 짐승의 형태로 살아간다.
보리에게는 의를 나눈 세 형제가 있었다. 대요괴 밑으로 기어들어온 작고 어린 요괴들이었으니 글을 익힌 시절부터 마수를 상대하는 수련을 하기까지 쭉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동고동락했다. 대요괴가 지나다니던 어린 개 요괴들을 냉큼 데려와 키운 건 기실 심심풀이의 용도였으나, 네 마리의 요괴 각자가 가진 목표는 상이했다. 황룡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거나, 강한 환력을 얻어 오로지 강해지는 걸 목표로 한다거나, 우리 모두를 위해 세상을 지키고 싶어한다거나. 보리의 경우엔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욕망이 없으니 훈련도 설렁설렁. 만약 운이 좋아 호중천에 발탁된다면 여기 있는 형제들의 소원을 이뤄 주어야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보리의 능력은 단순했다. 냄새를 잘 맡고 귀가 밝았으며, 동시에 잘 보았다. 어찌나 잘 보는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본다 하여 마수를 보는 눈이라 불렀다. 그러니 수련의 일환으로 대적하려는 마수를 찾는 것도 보리의 역할이었다. 처음 마수와 전면전을 치루었던 결과가 어떻게 됐냐고? 낙화하여 다시 원래의 몸을 찾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세어볼 수 없었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이런 훈련의 과정을 거치며 보리와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환력을 얻게 되었다만, 이번 호중천에 발탁된 건 네 마리의 개들 중 보리를 포함한 두 마리의 개 요괴였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호명을 거절해 자리에 당도한 요괴는 오로지 보리뿐이었다.
취미는 낚시. 낮잠 자기. 머리카락 다듬기. 긁기 좋은 나무 찾기, 땅 파헤치기, 알딸딸하게 취하기, 대나무 깨물기.
호불호를 나누기엔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몇 배는 더 많다. 단, 남이 제 머리를 쓰다듬는 건 썩 좋아하지 않는다.
환력은 인간 형태일 때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보제에 살식견의 힘을 불어넣어 마수를 격멸하는 파괴력을 내는 것. 살식견의 모습일 때 종종 머리가 혼탁해져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에나 완전히 변이한다. 봉술과 창술에 뛰어나며, 수련 중 가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진이 빠질 때까지 내달리는 습관이 있다.
아직 어린 요괴인 탓에 세상물정 모르는 게 많다. 그런 것치고 호기심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특히 개치고 인간에게 큰 관심이 없다. 초아에서도 몹시 외진 숲에서 보호자인 대요괴, 형제들과만 지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문명에서 멀어진 다소 폐쇄적인 생활을 했었다.
보리는 수컷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