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더이상 하얀 개라고 부르기엔 어폐가 있는 모습이다. 검은 먹칠을 한 부분이 늘어나 얼룩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릴 테다. 여전히 부시시한 머리카락은 예전보다 더 길고 엉킨 부분이 많았다. 제대로 손을 대지 않아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저 섬뜩한 노란 시선이란! 당장 물어 죽일 것 같은 시선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단 몇 초도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지 않으리라.
요괴이니만큼 재생력은 뛰어난 편이지만, 그를 추월하는 속도로 상처가 남아 아물지 않은 흔적이 점점이 피어났다. 조금 성장했던가? 가벼운 옷차림은 여느 때보다 초라하게 망가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낯빛, 생기를 잃은 눈, 광기에 찬 표정, 목에 걸린 쇳덩이까지. 전신에서 퍼져 나오는 기분 나쁜 기운은 결코 착각이라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멀쩡하다 싶은 것은, 우습게도 어울리지 않는 쇠목줄에 매달린 작은 보석과 왼팔에 두르고 있는 붉은 천이다. 천에는 요력이 담겨 있는 건지 함부로 몸을 굴려도 낡거나 해지는 일이 없었다.


@Kuakbong님 커미션


환력


탐식견 貪食
하얗고 긴 털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대한 개 환수.
마수를 뜯어먹고 멸하는 순수한 힘을 가진 존재. 그리고 그만큼 타락한 이. 빠른 움직임과 기민한 감각만큼은 여전하나, 더욱 공격적이고 난폭하게 변해 한 번 발견한 마수를 전부 먹어치울 때까지 결코 멈춰서지 않는다. 외부적으로 타격을 입힌다면 그나마 가라앉고는 하지만, 변이하고 나서 돌아올 때 정신적인 침투가 상당한 모양. 마수의 그림자를 삼키고 나서의 영향력이 비대해져 빠르게 강해지는 만큼 부작용 또한 커졌다.




보제


한때 봉의 형태였던 보리의 보제는 이제 두껍고 단단한 쇠 목걸이로 변해 있었다.
신축성이 없어 몸의 크기를 키운다 하더라도 너비에 맞추어 변형되지 않으며, 되려 괴이의 목을 졸라 폭력성을 부추겼다.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그로 인해 외부적 자극을 얻어 힘을 키워갔다.




성격


“우연히 마주치게 되거든, 절대 말을 걸지 말고 도망쳐.”
여유, 친절, 다정함, 장난스러움 등, 과거 보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일면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되길 바랐잖아.”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린 건지 적어도 다비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든 관심과 흥미는 마수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제 주변에 있던 괴이들이나 인간들은 존재감마저 지워버린 듯했다. 폭력적이고,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으며, 솟구치는 흥분을 가라앉힐 이성마저 흐려졌다. 그나마 황룡의 부름에 움직일 정도의 정신머리는 남아 있는 게 다행일까? 이마저도 마수를 더 많이, 쉽게 소멸시키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목줄 풀린 개처럼 굴면서 목을 감싼 목줄은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는 행동 양식을 파악하기도 쉬워졌다.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던 발걸음은 규칙적이되 불안정하니, 원초적 본능과 이끌림에 유약하여 다루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뼈를 부수기 위해 살을 내어 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기타


보리, 또는 다비의 첫 번째 호중천이 끝나고 난 뒤, 방문하겠다 선언한 괴이들을 만나러 짧은 여행을 떠났다. 이후 곡옥을 사용해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왜 바로 곡옥을 사용하지 않았느냐 하면, 너무 나태해진 본인이 어딜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꼼짝없이 드러누워 세월아 네월아 할 것이 걱정되었던 탓이다. 여하간, 욕망의 절개가 어떤 여파를 불러올지 모르고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잔여물을 토해냈을 때, 모든 게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빠르게 진행되어 지금과 같은 거친 요괴가 되었으니… 이를 순수히 ‘괴물’이라고 표현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리라.
100년이라는 시간은 전체의 우주를 기준으로 봤을 때 결코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로지 하나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괴이에게 있어서는 찰나와 영원의 사이에 걸쳐져 있었다. 시간 감각이 둔해져 눈 뜨고 한 달을 내리 돌아다니는가 하면, 한 번 잠들고 눈을 뜨니 고작 3분이 지나 있었다. 확실한 건 그는 이제 거의 잠들지 않는다. 이 영향으로 눈의 흰자가 매번 충혈되어 있다.
공백기동안 다비가 한 일은 딱 하나뿐이다. 마수를 멸하는 것. 천령 1425년도까지 도래했던 평화는 되려 다비에겐 끔찍한 시간이기도 했다. 간간이 형제들이 다비를 만나러 가곤 했지만, 지켜본 이 말하기를 대화는 커녕 괴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장이었다 하더라. 심할 땐 사흘 밤낮 가리지 않고 피를 흘려댔으니 인간들 사이에선 하얗고 거대한 개를 보면 반드시 피하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한 번은 초아의 한 시골 마을을 습격한 마수를 잡기 위해 그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데…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낙화를 몇 차례 경험했으나 썩 달라진 점은 없었다. 더 거칠어졌다면 모를까.
팔뚝에 두르고 있는 빨간 천은 친우이자 진도 형제인 누렁이와 까미(지금은 호가 제비와 숯덩이로 바뀌었다.)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마수로 인해 머리가 혼탁해졌을 때 정신 차리라는 용도로 받았다. 호중천의 부름을 받기 직전, 형제인 풍산개 요괴가 다비와 크게 싸워 낙화했다고 한다.
강석견 형님 왈, “너 알아서 해라.”
목소리가 많이 거칠어졌다. 저음에 발음도 불명확하다.
소통이 불가능하진 않다. 꽤 이성을 차릴 때도 있으며, 어? 옛 모습도 보이는 것 같은데? 할 만한 순간도 존재할 것이다. 그저 흥분한 상태만 아니라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