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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송

297세|17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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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어떤 희망을 가져오셨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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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의복이며 외형이 모두 인간의 것이다. 피부는 대체로 상처없이 깨끗하지만 등에 잔상처가 많은 것으로 보아, 피하지 못하는 전투도 그의 삶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이것을 알 수 없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등을 완벽하게 가리는 의복이었으며 거기에 더해 검은 외투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외투는 낡고 헤졌으며 단청송에게는 상당히 커보인다. 천을 자세히 보면 도대체 어떻게 입고다니는 건지 모를 정도로 헤져있지만 여러모로 손을 많이 써두었다며 입고다닌 지가 100년은 족히 되었다. 특별한 점은 이 외투는 누군가에게 받았다고 하며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검은 외투로 몸을 감싼 것을 볼 땐 상당히 답답해 보이지만 외투를 벗으면 꽤 휑한 옷을 입고 있다. 한두겹으로 만들어진 소매없는 상의는 앞섶이 벌어져 가슴이 드러나는 형태였다. 같은 천을 사용한 긴 치마, 그리고 한 세기 전부터 사용한 허리끈. 조금씩 낡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발은 신지 않고 붕대로 대충 감아 보호한다. 진동을 느끼기 좋다나.

 

그의 팔에는 노란 끈으로 만든 장식물과 100년전 호중천에서 만든 구슬팔찌가 자리하고 있다. 그를 기억 하는 사람들은 그의 긴 머리카락을 기억할 것이다. 세월이 지났으니 그보다 더 길어져야 순리에 맞겠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대충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적당히 기른 머리를 땋아내린 형태가 되었다. 얼굴은 모두가 아는 그 얼굴 그대로. 늙지도 않았다는 감상을 자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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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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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泥土)

이토, 말그대로 진흙, 점토. 대부분의 물이 섞여 질척한 흙을 이야기한다.

 

단청송은 기본적으로 흙과 물을 다루는 것에 아주 능하였다. 흙에 손을 대지 않고 움직이거나 바위를 어떤 모양을 만들어 조각을 할 수 있을정도로 능했다. 물도 마찬가지였다. 물 자체를 조종하여 타격을 입히거나 얇은 얼음으로 만들어 무언가를 베어내는 등 공격면에서도 상당히 유효했다. 그러나 이것은 요력으로 움직이는 것이며 특별한 힘이 없는 흙덩이와 물일 뿐이다. 그것들이 합쳐져 이토가 되는 순간 치유의 힘을 가진다.

 

기본적인 응용 방법은 상처부위에 진흙을 덮고, 단청송의 힘을 불어넣으면 치유가 되는 식. 많은 사람의 치유가 필요할때는 광범위하게 진흙을 풀었다가 땅으로 흡수시키거나 공격을 위해 회수한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이 싫거나 몸에 질척거리는 것이 닿는 게 싫은 사람은 단청송의 치유를 마다하기도 했다.

 

이토를 통해 적의 발을 묶어두거나 이것 자체로 강하게 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환력을 통해 움직이더라도 제 체중을 실은 무술이 동반할 경우, 더욱 힘이 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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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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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

승려가 짚는 지팡이로, 긴 막대 끝에 쇠고리를 댄 지팡이.

고리는 네 개, 걸을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나무막대로 보이는 것까지 보제의 하나로, 평소 엽전의 형태로 들고다니다가 피치못할 전투가 계속 생기는 바람에 그 형태를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습도 마음에 들어한다. 어떤 때엔 평범한 지팡이, 수수한 장신구가 되기도 한다.

 

절대 부러지지 않으며 아주 단단하여 물리적인 타격을 주기에도 탁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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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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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탕한 #솔직한

그의 인간적인 면은 여전하다. 완전한 이상은 사라지고 잦은 실수와 고민, 가끔은 후회를 하곤 한다. 그런 부분을 보면 누구나 같은 삶을 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며 눈물도 웃음도 화도 많은.. 아주 평범한 성격이다. 대부분 변한 게 없어보이나 딱 하나 변한 게 있어보인다면 그가 방랑하며 습득한 언어생활정도.

 

여전히 영원이 아닌 삶을 사는 것처럼 굴지만 여유가 생긴 모양이다. 느긋한 삶을 즐기는 자들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긴 하지만 말이다. 긴 시간을 살다보면 불행이나 불운에 무감각 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청송은 그것을 매우 경계하였다. 웃고 우는 것을 잘 표현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매 순간을 솔직하고 또 즐겁게 보내자는 단청송과 함께 있다면 즐겁거나 못해도 편안한 순간이 될것이다.



#사랑하는 #이성적인

 

이상할 정도로 단청송은 지성을 가진 것들을 믿었고 또 그들을 돌보길 즐겨했으니, 그의 평가로 다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성이 있는 것들은 원래 착하게 태어나는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이제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믿는 이유는 ‘혼돈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므로 외부에 있는 혼돈만이 위험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경험에서 출발한다. 앞서 언급한 경험을 기반하여, 그들의 마음이 마수라고 불리지 않는 것은 필히 각자의 질서가 그 혼돈을 누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단청송은 이렇게 믿는다. 혼돈이라는 마음이 날뛰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편한 일이며 질서로 누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온힘을 다해 어려운 일을 택하는 이들이 있기에, 단청송은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다정하고 선하다는 것, 남을 돌보고 돕길 좋아한다던 그는 동정심이나 본인의 ‘선함’때문에 그릇된 선택을 하기도 하는가? 아니면 필요이상의 친절을 베풀었나?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친절과 애정도 언젠가는 멈춰섰다. 여전히 단청송은 그들의 홀로서기를 지향하고 있으니, 어떤 매정한 말을 들어도, 그는 약한 것을 믿고 놔줬다. 그 사이에 비정하다며 비난을 사기도 하였으나 으레 인간은 모든 친절과 불친절이 자신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괴이인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흔들리며 피어나는

단청송은 가끔 고집이 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고집은 처음부터 만들어져 있던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지독할 정도의 이상주의자는 자신의 이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하며 흔들린다. 그가 꿈꾸며 사랑한 이상은 곧 자신이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고집을 부려야했다.

 

모진 비바람과 수천번의 밤이 지나야 꽃은 피어난다. 강한 바람을 타고 하늘을 누비는 씨앗이 곧 새싹을 틔운다. 단청송도 흔들리며 강해졌다. 이리저리 휘어지긴 하여도 꺾이지 않는 마음이 곧 그의 장점이고 강점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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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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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괴 단청송
그는 본디 요괴였다. 아주 잠시 신령이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찌된 일이냐 하면-


시작은 서쪽, 초아. 땅의 기운을 강하게 받으며 생겨난 단청송은 아주 한가롭고 정이 많은 요괴였다. 이곳 저곳 그의 발이 땅에 닿기만 한다면 어디든지 그가 살 수 있었으므로. 160년 전 쯤에 그가 아주 작고 가난한 마을을 찾은 건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곳은 초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유도 아니었다. 그러면 중앙인가? 모르겠다. 아주 작은 그 마을은 땅 끝에 있었고 힘이 없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땅이었더라면 오히려 부유했을 것을. 그들은 너무나도 외져서 어쩔수 없이 혼돈의 잔해를 마주보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했지만 충분할 수 없었고 가난을 알았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그들을 안타깝게여겼긴 단청송은 그들을 돕기로 하였다. 요력을 통해 비옥한 땅을 만들어주었고 비가 오지 않으면 강물을 끌어다 주었다. 가끔은 어린 아이와 노인을 기도에 따라 몰래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정을 주었다. 자연스럽게 단청송은 그 마을에서 신앙을 얻게 되었으며, 신령이 되었다. 이때 알려진 호는 석림(石林)이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마을의 모든 순환이 멈출 쯤 그의 호, 석림은 죽음을 맞이했다. 신앙은 줄었으며 그와 동시에 호를 달리 알렸다. 그가 한 일은 공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신앙을 키울 수 있었을 텐데, 부러 마다했다. 그렇게 돌아온 요괴의 호는 옥목(鈺木)이었다.



#2. 여전히 그는 요괴이다.

 

알 괴이,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신령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그는 "그러고 싶을 뿐입니다. 왜요." 하고 답하였다. 많이 바뀌었다고 놀라지 말라, 그는 방랑을 하며 입이 생각보다 거칠어졌다. 그렇게 그는 석림이 되었다가, 옥목이 되었다가. 또 다른 호가 되었다가 단청송이 되었다.

 


#3. 낮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것은 단청송의 근원과 함께 살아가며 쌓은 경험의 축약이다. 이전 호중천 이후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는 머물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며 여행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이들은 그와 만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계속 요괴였다. 그 시간동안 한 일이라곤 여행을 다니고 떠돌아다니며 인간 사이에서 모든 일을 바라보고 또 그들을 돕는 것. 그런데도 왜, 어떻게 신령이 되지 않았는가 하면 그가 인간이나 어떤것을 도우며 자신의 호와 이름을 일절 알리지 않았고, 알려지더라도 인간들 스스로가 침묵해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문으로 그를 찾기란 조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4. 그래도 약속은 지킨다.

100년 전, 누군가들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아주 애를 쓰던 단청송이다. 좋은 얼굴로 나타나 무엇이든 내어주고는 돌아갔을 것인데, 그때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가 있었을 수도. 이유를 물으면 더워서요, 추워서요, 기분 전환. 같은 소리나 한다.


#5. 현재 :전투

먼저, 그는싸움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했다. 그렇다고 지금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니 필요하여 익힐 뿐. 우선 그의 기본 속성은 품는 것이지 내치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과 삶조차 돌아오는 생사의 집이 땅이고 어떤것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품는 게 단청송의 근원이자 속성이었다. 마수와 마찬가지로 원치않던 전투 역시 자신의 속성때문이리라. 사랑해마지않는 생명들이 살아가는 곳,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질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전투에 능한지 아닌지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력이 약한 인간은 굳이 접촉하지 않아도 제압할 수 있다는 말이 돈다.

 

#6. 호불호

好 - 물, 나무, 땅, 생명 등등 순환하는 대부분의 것들, 폭포 떨어지는 소리, 신뢰받는 것, 취미생활

不好 -외로움, 필요이상의 폭력사태, 마수, 취미생활을 방해받는 것. 과음




#7. 취미생활


요력으로 바위를 조각하는 걸 좋아한다. 명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자기 수양을 하거나 이곳저곳 돌아가니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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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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