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런 건 침 한 방만 놓으면 싸악 나을 텐데.
백회, 곡지, 중완, 폐유, 고황. 어디가 좋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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辉瑛
휘영
120세|170cm



전보다 길어진 머리는 뿌리부터 색이 하얗게 바래있었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긴 꽁지머리의 끝에서야 예전 머리색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 색은 물론이거니와, 앳된 티가 사라져 전체적인 느낌이 변하고 키도 제법 자란지라, 7번째 호중천 이후 처음 만난다면 놀랄 수도 있겠다.
통이 넓은 바지와 펄럭이는 장포가 움직이기 거추장스러울 법도 하건만 본인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허리께에는 침통과 함께 구슬이 잘랑거리며, 멱리는 제가 내킬 때 벗었다 다시 쓰곤 했다.
호중천에 소집되어 잠시 떠돌이 의원 생활을 청산해야 하므로, 평소와 달리 화려한 의복을 입고 있다. 오랜만에 칙칙하지 않은 옷을 입어 조금 신났다.




환력


육문일침
그가 환력을 사용할 때, 주변엔 하얀 안개가 낀다.
이것을 옅게 흩뿌리면 사람들의 기력을 돋워주고, 두텁게 쌓아 올리면 일정량의 피해를 흡수한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매개체로 하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데, 주로 머리카락을 뽑아 사용한다. 힘이 담긴 머리카락은 마치 침처럼 꼿꼿한 형상을 띄며, 담는 힘의 양에 따라 적에겐 독이, 아군에겐 약이 된다.
전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차이점을 간단하게 꼽아보자면,
一. 주의를 기울이면 안개를 감출 수 있게 되었다.
二. 능력을 사용할 때 주변에서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三. 여러 가닥을 뽑아 기운을 섞어 굳히면 더 큰 파괴력을 낼 수 있다.
(형태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편의성 때문에 대게 비도 모양을 택한다.)




보제


침통
원래 휘영의 환력은 시간이 지나면 침에 담긴 힘이 점점 주변으로 흩어져, 종래엔 평범한 머리카락으로 돌아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침통에 담아 보관하게 되면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안에서 돌고 도니, 바로 뽑아서 쓰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성격


:: 수상한 떠돌이 의원 / 방랑벽 / 인생무상 / 속물적인 까마귀 ::
“집 안에 중병 환자가 있으신 분,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시는 분, 비 오는 날이면 무릎이 말썽을 부리시는 분, 음식을 잘못 먹어 배앓이하시는 분! 모두 이 아무개에게 오시면 됩니다! 대가는 필요하겠지만 말이죠.”
수수한 차림에 멱리로 얼굴을 가린 청년이 마을에 처음 들어서면 하는 일이 있다.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모으고, 제 주인의 능력을 파는 것이다.
그자가 하는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비승을 코앞에 둔 한 신령이 있다. 그는 인간을 매우 귀애하여, 혹세에 이들만 내버려 두고 저 혼자 천계에 가는 게 마음에 걸렸으니, 자신의 뜻을 받들 사자를 뽑아 신물을 내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명했다. 다만, 더 이상 신앙이 모이면 안 되니, 자신의 호를 밝히지 말 것을 명심해야 한다.
처음 본 사람들은 허황한 이야기라 여겨 무시하였다. 어디 사람을 놀리냐며 욕을 하는 인간도 많았다. 가벼운 말투, 건들거리는 태도는 그를 어디 수상한 약이라도 팔러온 사기꾼처럼 보이게 해, 이런 반응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의학적 지식이 있는 자라면 더더욱 그리 느껴질 것이다. 용천혈이 어쩌니, 낙침혈이 어떻니, 번드르르한 말로 포장되어있지만, 그가 하는 처방이라고 해봐야, 증상과 별 관련 없는 혈 자리를 잡아 침을 놓아주고 기력 회복에 좋다고 알려진 흔한 약초를 달여주는 게 다였으니.
그러나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치료를 부탁한 이가 나타났으니, 가주가 중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한지 수 해가 넘어간 집의 자식이었다.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청년이 돌팔이라며 쫓겨날 거로 생각했으나,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그는 집안의 귀인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값비싼 명약을 써도 호전이 없던 가주가 다음날 의식을 차린 것이다. 병이 씻은 듯이 나은 건 아니나,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은 명확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청년을 찾기 시작했다. ‘소정의 성의’만 보이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명의에게 치료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간단한가? 그 성의가 모여 어느 정도의 재산이 되었을지는 청년만이 알 것이다.
“왜 대가를 받냐니, 제 주인의 뜻을 이루려면 다음 마을로 향할 여비를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한 법이지요.”
*
그다음 마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 매번 불신의 시선을 받고 날 선 이야기를 들은 후, 그것을 뒤엎는 과정이 고달플 법도 하건만, 그는 꿋꿋하게 여정을 이어갔다. 머무는 기간에 조금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코 정착하는 법이 없었다.
모든 일은 제 주인의 뜻. 거대한 앵무라도 된 듯,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하는 모습은 주관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이름을 물어보아도, 저는 이름이 없다. 굳이 호칭이 필요하다면 아무개라고 불러달라 하였다. 허나 귀한 의원님을 그런 식으로 부를 수는 없는 법. 사람들 사이에서 무명(無名) 선생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신앙이 모이는 게 싫어 이름이 없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그게 이름이 되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그 일이 있은 뒤로 휘영은 그냥 그때그때 떠오르는 호를 만들어 생활했다. 신령이 되다니, 아니 될 일이지!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호가 바뀌니, 여태껏 제가 쓴 것을 다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런 떠돌이 의원 생활을 시작한 지, 60년이 되던 해, 8번째 호중천이 소집되었다.
*
“호가 바뀌어 헷갈릴 자네들을 위해 내 특별히 비슷하게 지어왔지. 고맙지 않은가? 그래도 헷갈린다면 다정하게 영아~ 하고 부르면 된다네.”
다만 이 모든 건 인간을 대할 때의 모습일 뿐, 괴이 앞이라면 조금 다를 것이다. 목소리엔 장난기가 깃들고, 제 주인을 언급하며 선을 긋는 태도도 누그러졌다.
환란의 시대에 의원으로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사람이 얼마나 쉽게 죽는지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까? 인간의 생이란 참으로 덧없으니(人生無常), 그들과 나누는 교분도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묘하게 인간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 보여. 과거 인간 친화적이었던 모습과 대비되었다.
*
“다른 곳은 다쳐도 얼굴은 다치면 안 됩니다!”
이렇게 바뀐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인 것도 있으니, 바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에 대한 수집욕이다. 다만 그 범위가 제법 넓어졌는데, 이젠 물건뿐만 아니라 활물까지도 그 영역에 포함되었다. 개체마다 겉모습이 다른 만큼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지론하에, 그게 특히 잘 드러나는 얼굴은, 그가 제일 아끼는 신체 부위가 되었다.
그렇다고 생물을 박제하고 싶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남의 외모를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니, 적당히 무해하다면 무해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시선이 너무 뜨거워, 종종 이것을 다른 감정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기보단 어디 공예품을 구경하는 눈초리에 가까우니, 헷갈리지 않도록 조심하자.




기타


여성. 여전히 자신과 10살 이상 차이가 나면 호+아재라는 호칭을 쓴다. 이제는 괴이에게 10년이라는 시간이 별것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냥 원래 쓰던 호칭이 익숙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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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주워 치료하곤 한다. 온전한 선의로 이루어진 행동은 아니었다. 일단 정신을 잃은 사람을 멋대로 구해주고, 의식을 차리면 진료비를 뜯어내는 일종의 강매에 가까운 행위였다.
가끔 생명의 은인이라며 치료비 이상을 보답해주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때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반대로 약초값을 낼 만한 형편도 안되는 사람도 종종 만났는데, 그럴 땐 간단한 약초 정리를 시키는 등 돈 대신 노동력을 받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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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째 호중천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중천의 영웅이 살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효과 좋은 온천 이야기가 인근 마을로 퍼져 암유촌은 더 이상 작은 산골 마을이 아니게 됐다. 엄청난 관광지까진 아니더라도, 지역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 심심하면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수준이었다.
소문의 영웅 나리는 보지 못했지만, 온천이 기대 이상이라 사람들은 만족하며 돌아갔다. 가끔 암유촌 주변에서 휘영과 비슷하게 생긴 이를 봤다는 목격담이 들리긴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천령 1373년부터 1423년까지, 40년 동안의 행적이 묘연하다. 이 시기에 누가 휘영을 찾았어도 허탕을 쳤을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다들 연청으로 거처를 옮겼으니, 때아닌 전성기를 맞았던 암유촌은 폐허가 되었다.
*
“이걸 왜 주냐니, 그야 보기 좋아서지요! 당신은 지금부터 이 장신구의 거치대입니다.”
그에게는 요상한 취미가 하나 생겼다. 열심히 번 돈으로 모아온 귀중품을 내킬 때 상대방에게 턱하고 건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제 주머니에 있을 때보다 상대방에게 걸어두니 잘 어울려보기 좋다. 사람과 물건의 매력이 배가되니 당신을 거치대로 삼겠다는 괴상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다만 선물로 준 것이 아니라, 그저 걸어두고 저가 보고 싶을 때 구경하기 위한 행위인지라, 이렇게 준 물건의 소유권은 여전히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휘영 몰래 장신구를 처분한다면 도둑놈 취급을 받을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