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걱정 따위는 잊고 저를 따라오시는 건 어떠합니까. ”


熹娑
희사
114세|153cm



一 하나. 옅은 담갈색은 고운 비단마냥 부드러웠으며 고작 턱 끝에서 살랑거렸다. 고운 눈매를 옅은 담갈색의 속눈썹이 자리잡았으나 그것과 마주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러니 누구도 그의 눈을 본적이 없다고 하였다. 보이지 않아도 보였고, 보지 않아도 보았으리라. 그럼에도 드러나는 표정은 숨기는 것 하나 없이 부드럽고 다채로웠으며 언제나 미소를 그렸다.
二 둘. 머리와 상의 그리고 허리춤에 펼쳐진 담녹색의 장막은 투명하게 비추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흔들거렸다. 오른쪽의 귀에는 하얀색의 털 아래로 늘어진 붉은 술이 달려 있고, 아무 것도 신지 아니한 발 위로 붉은 색의 작은 술이 달린 장신구가 자리를 잡으니 어딜 보아도 가희의 행색이었다.
三 셋. 눈 아래는 붉은색의 눈화장과 더불어 이마에도 화전을 그려놓았다. 담녹색 사이 붉은색은 당연하게도 게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환력


경화수월 镜花水月
눈으로 볼 수 있으매 잡을 수 없으리라.
보이는 것과 보았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실체화하였다. 본디 우리는 이것을 실체화에 가까운 환영幻影이라 불렀다. 좀 더 면밀하게 말하자면 보제에 비추었던 것들을 실체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성질이나 성격만큼은 흉내 내지 못하였다. 명확히 무無의 성질을 가졌기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형태의 환력이다. 말하자면 이렇다. 한 송이의 꽃을 실체화한다면 그것은 바람에 흔들릴 수 있으나 향이 나거나 시들지 아니하였다.
다만 살아있는 생명은 절대적으로 그가 간섭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사람과 동물, 괴이와 마물이 범주에 속했다. 그러니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은 그의 손과 발이 되어 지키고 싸우며
그렇다면 그의 환력은 무한한가? 그렇지는 않았다. 강한 힘을 받거나 그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할 때는 사라지는 건 당연했다. 독특하게도 연기처럼 실체화되었다면 사라질 때는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조각되어 흩어졌다.




보제


면경 面鏡
허리춤에 붉은색의 노리개와 함께 손바닥만 한 혹은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거울 형태로 매달려 있다.
일반적인 유리보다는 단단하여 쉽게 깨지지 않으며 때로는 노리개의 장식과 부딪혀 맑은 소리를 내기도 한다.




성격


애정 · 방랑 · 유약 · 단순
그 애정에는 한 줌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느니
인간에 의하여, 그들의 신앙과 믿음으로 태어난 신령이기에 참으로 그는 인간을 사랑한다. 눈을 떠 처음 본 것도 인간이오, 처음 말을 한 것도 인간이오, 이후 그 모든 걸음과 시야에는 인간이 머물렀다. 마치 각인이라도 된 아기새처럼.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그는 인간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를 보아라, 또 인간들 속에 섞여 들어가 이야기하고 웃으며 행복해하는 것을.
바람에 일렁이는 그의 모든 것들이 참으로 부드럽다. 머리칼도, 목소리도, 옷자락도, 매달린 눈웃음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애정도. 그 순수함은 주변의 괴이에 비해 어리기 때문인지 혹은 때 묻지 않은 특유의 성정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나쁜 것은 없으니 되었다.
속해 있되 떠나가는 걸음은 자유롭게 색을 만들어가는 음률이 되어
인간의 곁에 머물렀으나 또 그만큼 또 다른 인간들의 곁으로 떠나기를 반복하였다. 그는 한곳에 머무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흔히 말하기를 우리는 자유로운 방랑자라고 한다지. 그는 인간들의 이야기, 더 나아가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두 눈으로 보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곳에 머무르기보다는 떠나는 것이 더 이로웠으리. 그만큼 그는 세상의 이치를 폭넓게 알고 이해하였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풍문에 의하면 그가 머문 마을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아니하고 울던 자도 울음을 그치거나 메마른 곳에는 비가 내리거나 바라옵건대 원하는 것을 얻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가더라
인간들을 말로 더 애정하는 이가 지는 법이라고 하던가. 그는 인간이 원한다면 간이고 쓸개고 내어줄 것처럼 굴었다. 어찌 보면 인간보다 유약해 보이니 늘 주의하고 또 조심하라고 듣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도 사랑하여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줄 수 있고, 알려줄 수 있기에 괜찮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아무렴 어떠하리. 인간은 고작 한철 살아가는 나이었고 그동안 바라는 바를 이루어주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테니.
귀가 얇고 호기심이 짙고,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는 단순함이란! 인간으로 따지자면 철이 들고도 남았을 나이지만 괴이로 치자면 아직 어린 괴이니, 시간이 흐르고 성장을 한다면 자신의 뜻을 펼치지 않겠는가.




기타


희사熹娑
양손잡이
동부에서는 바닷냄새, 서부에서는 풀 내새, 남부에서는 모래 내음, 북부에서는 눈 내음 등 주변의 향과 쉽게 동화되어 특유의 향이 그에게 묻어났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그는 무향無香
주로 경어를 쓰고 호와 -님을 붙여 불렀다.
호好
인간, 창현국, 이야기, 햇빛, 이불
불호不好
괴음, 비
신령神靈
초아와 주역의 경계에 위치한 마을, 원청聽願. 그곳에는 거울 하나가 있었고 그들은 그 거울에 매달 제를 지내었다. 거울은 세상을 담고 사실이나 바라는 것을 비추니, 간절히 빌면 그에 달하는 길을 알려주는 신비한 물건이라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숭배하는 자들은 뜻과 세상의 이치, 그에 대한 답을 알려주길 바라는 인간들의 기원 모여 탄생하였다.
본디 태어난 곳에서 멀리까지 움직이는 일은 드물었으나 질문에 답을 하고, 세상의 이치를 알고, 이야기를 많이 아는 것이 그에게는 결코 끝까지 채울 수 없는 지식이오, 언제나 갈망하고 바라는 것들이었다. 하여 그 성정 때문인지 창현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의 행색은 떠돌이 가희의 모습을 하였고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으니 처음 보는 이들은 한눈에 눈치채는 일은 적었다. 물론 기이함과 신령으로써의 성정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 알려진 거울에 대한 신비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호중천壶中天
상흔이 생긴 것은 탄생한 지 겨우 2년. 신령이라고는 하나 아직은 어린 괴이. 나타난 혼돈의 마수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물리칠 수 없는 마수임을 알았기에 마을에 피해가 나지 않도록 생명이 없는 오직 사막의 모래만 흩날리는 곳으로 유도하여 도망갔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보았으나 용케도 낙화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황룡의 축복을 받고, 6번째 소집에 응하였고 이번이 두 번째 소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