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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몸, 오직 귀하를 위해 쓰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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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ga418 님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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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82세|17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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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이 감도는 흰 머리카락. 굽실대는 머리카락이 목덜미 아래를 가볍게 덮어 내려앉아 있다. 피부는 기이하고도 맑은 흑색인데 곧바로 눈의 빛깔을 알아보지 못함은 그가 쓰고 있는 가면 때문이다. 동물의 머리뼈를 그대로 뒤집어 쓴 그는 뻥 뚫려 검게 보이는 눈으로 묵묵히 서 있는다. 하여, 눈의 색은 달리 없다. 눈이 없기 때문이고, 그래서 앞을 보지 못한다. 가면을 벗기면 눈감은 얼굴이 드러날 뿐이며 감은 눈마저 억지로 떠올리면 뻥 뚫린 검은 구멍이 나온다. 특이사항은 그것이 전부다.

 

오래 입어 헤진 망토를 착용한다. 머리 덮개까지 꼭 당겨 쓰고 있어서 그의 몸 가운데 드러나는 부위는 많지 않다. 발끝까지 내려오는 망토 탓에 가뜩이나 크지 않은 키가 더욱 작아 보이고, 앙상한 몸은 진정 뼈만 드러난 듯하다. 손과 발 또한 그닥 크지 않아 얼핏 보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만만히 보이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닌 게, 거대한 짐승의 뼈를 무장 삼아 입은 양 망토 위로 몸을 꼭꼭 감싼 흰 뼈들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뼈들은 그를 끌어안는 모양새로 뻗쳐있고, 마침내 손에 다다르면 꼭 호갑투처럼 뾰족한 뼈 장식물이 손가락에 꽂혀 있으니 그는 그야말로 갑주를 입은 신성한 자처럼 보인다. 다만, 죽음과 짐승 뼈의 비호를 받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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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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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그림자 (생영/牲影)

뼈만 남은 짐승을 불러들여 자신의 군대로써 부릴 수 있다.

이 뼈만 남은 군대는 땅에서 솟아올라 주인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명령을 이행하는데, 섬세한 행동은 불가능하며 저 스스로의 이성이나 지성 또한 없어 대부분 직접 몸을 부딪히는 투박한 방식으로 마수에게 유효타를 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뼈를 활짝 열어 대상을 감싸는 등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호갑투를 낀 손가락으로 한정되어, 한 번에 최대 여섯 구의 짐승 뼈만을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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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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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갑투>로 대표되는 뼈의 갑주

무기 겸용으로 사용하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손가락 마디마디에 착용한 <여섯 개의 호갑투>다.

그러나 단순히 이것만을 보제라고 할 수는 없으며, 정확히는 호갑투까지로 이어지는 몸을 감싼 동물 뼈의 갑주 전체가 보제에 속한다. 이 뼈의 모양은 의지에 따라 몸을 다르게 옥죄고, 느슨히 하며 주인을 보호하고 호갑투를 움직이는 손길은  <생의 그림자>를 다루는 데에 쓰인다. 

 

본인은 이 보제를 두고, 자신을 평생토록 끌어안고 있어 줄 존재라 하여 ‘생의 반려’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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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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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바른. 공평한. 무색무취?

 

<예의바른>

얼핏 위협적인 무장. 그러나 참으로 왜소한 외관. 그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게 성격은 공손하고 예의바르다.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높임말을 쓰며, 상대를 존중하며 배려하는 일이 몸에 스며들어 있다. 쉬이 웃지는 않지만 나긋나긋한 성질이 있어 어떤 상대를 만나도 대화에 무리가 없다.

 

<공평한>

이는 그의 공평한 성질이 또 한 몫을 하는데, 모두에게 다정하고 잘 대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공평>하여 그는 누군가를 특별히 대우하지 않는다. 봉사하는 삶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단 특별은 없어도 차우는 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하는 것이 정말로 공평한 대접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대가 바라고 원하는 일을 하며 설령 그 일이 옳지 못하고, 예를 들어 폭력적인 일이라고 하여도 모두에게 공평히 <상대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준다. 공평한 대접에 진정한 이해는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하필 말버릇도… … 이 몸, 오직 당신을 위해.

<무색무취?>

그런 점들 때문에 냉랭하다거나 감정이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기가 쉽다. 실제로 무색무취하다는 느낌이 강렬하다. 자아가 없고 얼핏 수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의 다른 면을 보자면 그렇지도 않다. 변덕스럽고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호불호가 적기는 해도, 싫고 좋은 것을 가르는 경계가 분명하여 싫은 것은 분명히 싫다 말하고, 좋은 것은 분명히 좋다고 말한다. (물론, 싫다고 해서 꺼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싫을 뿐.) 짐짓 발랄한 부분도 있으니 그를 종잡기란 무척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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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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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유의 가장 끝자락, 산 속 높은 곳에 있는 작은 마을 <치자>에서 왔다. 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는데 무이는 이를 ‘생과 사의 여부란 모두에게 공평하니, 보이는 것으로 사사로운 것을 나누거나 우선시 하지 말란 거대한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죽음, 생명에게 내려지는 가장 공평한 평화인 것이다.

 

생활에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신력을 통해, 볼 수 없는 대신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정도는 느낄 수 있다. 다만 그것을 명확히 확신할 수 없을 뿐이다. 생명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가장 크게 분류된다. 그가 느끼는 세상이란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 불길한 존재, 몸집이 큰 존재, 몸집이 작은 존재, 생명체와 생명이 아닌 것… 이렇게 단순하다.

 

호불호의 폭이 굉장히 좁다. 웬만해선 가리지 않지만 동물과 같은 생명을 유독 아끼고 사랑한다. 또, 술 같은 독한 것은 무척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몸에 좋지만 독한 맛이 나는 약초 등의 좋은 것도 포함된다. 입맛이 어린아이 같아 제가 나고 자란 마을에서도 빈축을 많이 샀다.

 

외관 상으로 보여지는 (외관이랄 것이 많지 않지만,) 나이는 대략 스물 다섯, 일곱 즈음이다. 매사 초연한 모습은 늙은이 같다가도 세상 물정을 잘 알지 못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일 땐 마냥 아이 같다. 산 꼭대기 마을에서만 생활해서 그렇다.

 

<치자>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며 짐승 가죽과 약초, 광석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이 마을의 사람들은 척박한 생활과 혹독한 환경에 따른 독특한 풍습과 신앙이 있다. 바로 절벽 틈새에 어린아이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추운 환경. 산짐승들에게 노출되어 있으며, 그게 아니라도 산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하여, 어린아이의 사망률이 굉장히 높은데 추위에 얼어붙은 땅에 죽은 몸을 매장할 수 없었던 까닭에 죽은 아이의 작은 몸을 절벽과 절벽 사이 뒤틀리며 생긴 비좁은 틈에 밀어넣고 장례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 그러나 그 시체를 굶주린 짐승이 뜯어먹을 위협 역시 언제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사냥한 짐승의 뼈 (특히 갈비뼈)로 아이의 몸을 감싸 절벽 틈으로 밀어넣었고, 이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관이 자신들의 죽은 아이를 보호해줄 것이라 믿었다. 마을 사람들의 강렬한 보호 욕구와 죽음으로부터의 회피 욕망이 신앙을 이루었고, 지금으로부터 82년 전 신령 무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호 무이. 마을을 위해 힘쓰는 이란 뜻이다.

 

무이는 스무 해 동안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보제의 움직임을 본 마을 사람들이 지어 입힌 모자 달린 망토를 평생의 수의처럼 입게 되었다. 이 옷은 무이가 자랄 때마다 바뀌었는데 키가 다 자란 후로는 완전히 헤져 못 쓰게 될 때에만 새 것으로 바꾼다. 마을 사람들의 신앙과 극진한 사랑 안에서 성장한 터라 그들의 희망과 바람에 부응하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제 마을 바깥의 일이나 세계란 정말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여하간, 그의 나이 마흔 즈음이 되었을 때, 무이는 직접 마을의 장례 의식을 돌보았으며, 그밖에도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 곁에 존재하고, 사냥에 함께 나가는 등 마을의 생사에 얽힌 일을 주로 도맡았다. 그는 마치 수호신처럼 떠받들여졌는데, 가장 큰 계기는 이것 때문이었다. 

 

절벽으로 된 산을 가르며 나타난 마수를 저지하여 물러나게 한 것이다. 무이의 신력 그 자체에는 공격적인 힘이 없다. 다만, 절벽이라는 지형을 이용해, 더하여 몸을 보호하는 약간의 신력으로 마수를 가로막고 버틴 것이 전부였지만 이때 가면이 깨지면서 생긴 얼굴 위쪽과 귀에 남은 상흔 덕에 황룡에게 환력을 부여받았다. 이전까진 제 힘을 썩 잘 다룬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무이도 환력을 부여받은 이후로는 노력으로 갈고 닦아 점차 강해질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바깥으로 향하여 갔고, 그들은 무이가 황룡의 무름을 받아 저들을 위해 싸워주길 바라게 되었다. 무이는 그것을 고스란히 따랐다.

 

그러니까 황룡의 부름에 응한 것은, 저를 찾아준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제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의무. 아주 단순한 이유였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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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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