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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귀재천이라, 비승까지 운수로 할 예정인데. 왜, 불만이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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魍魎主
망량주

553세|190cm

​외관 나이 20대 중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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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자면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 이리저리 삐죽 솟아 흘러넘키는 검은 머리칼도, 연지 화장도, 주렁주렁 매달린 장신구도, 시시때때로 바뀌는 화려한 복식도 건재했다. 그런 만큼이나, 금빛을 띠는 왼쪽 눈은 그를 오설상재로 알고 있던 이들에게 강렬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여상스럽게 웃고 있는 미소는 예전과 같아 보였으나 더는 장사꾼이나 사기꾼의 기질은 없었다. 대신 간혹 짓는 권태로운 표정은 마치 이 세상 자체에 질린 것만 같기에, 그가 이제는 오설상재가 아닌 망량주라는 사실을 더욱 체감할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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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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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비명야莫非命也

만사 막비명야라, 모든 것은 운수에 달려 있음이라.

 

‘오늘은 어떤 물건’을 사용하면 필시 운수가 좋을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환력의 운용은 정말로 그가 손을 댄 병기의 강도와 예리함을 비상시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수중에 병기가 들어오면 이를 제비로 만들어 점을 치는 산통 안에 집어넣는다. 이후 병기의 이름이 적힌 산통을 흔들어 하나를 뽑고, 그 무기를 사용하면 평시의 힘보다 더욱이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오설상재는 그동안 노름판에서 판돈 삼아 얻어온 무기가 무수히 많았으므로 산통을 채우고 있는 제비 역시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환력으로 만들어낸 산통에는 무기라 부르기 어려운 제비들도 잔뜩 들어 있었다. 가령 나막신이라거나 장신구가 그러했다. 얼핏 보기에 쓸모가 전혀 없어 보이는 물건들까지 산통 안에 넣어둔 이유가 있다. 만사 막비명야라, 모든 무기가 쓸만하다면 운만 있고 닥쳐 오는 불행이 없으니 정녕 운수에 맡기고자 한다면 꽝이 있어야 한다는 기이한 확신에서 비롯된 일이다. 기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오설상재의 믿음은 기이하게도 환력이 실제로 무기를 강화시킬 수 있게끔 작용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를 테면 운수대통이라는 제비가 그러했다. 오설상재는 산통에 이 제비를 넣은 적이 없었지만 제비는 어느날 자연스레 생겨났다. 운수대통 제비를 뽑게 되면 어떠한 무기를 꺼내든 환력이 깃들게 되었으니 이 또한 막비명야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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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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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

一 二 三…, 도합 숫자 여섯 개가 음각으로 새겨진 굴림돌이었다.

사실 돌이라고 일컫기에는 보석과도 같았다. 오색빛깔로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은 단백석의 모습을 닮아 있었고, 아름답게 세공되어 가시적인 미에 중점을 둔 보제였다. 타인에게 보일 법한 쓸모란 오로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망량주는 이 주사위로 곧잘 노름을 하기도 했는데, 다른 이가 보기에는 아무리 보아도 동반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험하게 다루는 것은 예삿일이고 오늘 처음 본 치에게도 구경해 보라며 덥썩덥썩 쥐여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설마 망량주는 뽐내고 자랑하지 못하면 낙화하기라도 하나 싶을 정도였다. 

 

 이제는 귀시장의 주인이 되었으니 그의 보제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보제는 아름다운 장식품에 불과했기에 감히, 혹은 굳이 탐을 내는 괴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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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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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사교 | 위선 | 호기심 · 쾌락주의

 

 속내는 모를 일이나 근 100년 간 격동하는 대지를 마주하면서도 겉으로는 달라진 점 하나 없었다. 의도적인 습관은 이제 온전히 제 것이 되어 원래부터 그러했던 괴이인 것처럼 굴었다. 여유로운 미소, 한량스러운 태도, 호감을 주거나, 호감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적을 만들지는 않을 언행은 어느새 체화되어 원래의 습관이 어땠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몹시 드문 일이지만 지치게 되면 만사가 귀찮다는 듯이 하루이틀 정도 처박혀 잠만 자거나 가만히 누워 있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평소에 하는 행동이 워낙 치장된 사교에 기반하고 있기에 다들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는 아직까지도 연기의 영역에 속했고, 그러므로 본인이 연기할 필요가 없다 판단하게 되면 본연의 냉소적인 태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낮은 목소리는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정중한 존대 사이 말 끝을 흐리는 반말이 번갈아 나오는 말투가 허물없이 느슨하다. 예의 없어 보이지는 않을 법하면서도 지나치게 극진하지는 않은 태도였다. 자리가 됨됨이를 만든다던가?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끔은 거만한 태가 나기도 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쉬웠다. 막역하게 서로 호를 애칭처럼 호명하는 경우에서도 어쩐지 벽이 있었다.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이 보여도 태도 깊이 인공적인 면모가 나타났으며, 그런 까닭에 사적인 거리로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타인이 불행을 겪는 것을 보면 걱정하고 위로해 주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반대인 모습을 종종 내비치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으로, 자신이나 제 영역 안의 인물이라 인식한 사람들이 직접 연루되지 않은 이상에야 사건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관망하는 듯한 태도를 은연중에 내비칠 때가 존재했다. 시장 노름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선행을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계산적인 속내 내에서 선행을 하며, 그조차도 자신이 그다지 득을 볼 것이 없다면 웬만해선 먼저 나서지 않았다. 다만 그러한 성향의 그를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그닥 존재치 않던 모양이었다. 그저 위선을 보일 뿐이지, 부러 악행을 하는 성정도 아니었던 탓이다.

 

 그러나 제 막역한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아도 남의 이야기는 궁금해 했다. 유들유들한 말투가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표하곤 했는데, 또 선경이라도 쉬이 들여다 보는 존재마냥 선은 넘지 않았다. 어쩌면 사과가 빠를 뿐인지도 몰랐다. 집요하다 싶어지면 금세 물러났다. 마음에 담아두기 머쓱할 정도로 서둘러 돌아오는 사의謝意를 마주하면 떨떠름하더라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와 상황에 대한 파악이 신속하고, 영악하게도 그에 맞추어 행동할 줄 알았다. 호기심이나 감정이 동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기본적으로 손해를 볼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행동 철칙이었다. 자기 자신을 챙기는 것을 가장 급선무로 여기면서도,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흠 잡히지 않으며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특히나 능청스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속한 판단력과 행동력을 지니고 있으나 자신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두말할 필요 없이 이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부차적인 태도를 지나 본질에 대해 논하자면, 그를 움직이는 것은 대개 흥미였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큰 탓에 때로는 급진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으므로 이기적인 면모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삶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쾌락적인 면을 중시하는 부분 또한 크게 존재하니 더욱 그랬다. 특히 노름판에 껴들어 거나하게 판돈을 올리고 있는 그를 보아하면 외려 날파리와도 같이 제 생을 여기는 것 같이 보일 수 있겠다고도 여겨졌다. 귀시장의 우두머리가 된 지금은 그조차 제 눈치를 보는 괴이들 탓에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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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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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시장: 이매망량장魑魅魍魎場]

 그는 온갖 욕망들이 어지럽게 오가는 노름판에서 기원했던 만큼 욕심이 아주 많았다. 그 사실을 숨기려 든 적도 없었으니 조금이라도 대화해본 이라면 쉬이 눈치챌 수 있었을 테다. 욕망으로 말미암은 근원에서 태어나 끝내 다다른 곳이 귀시장이니, 남몰래 귀시장의 간부 역할이 아닌 귀시장 전체를 제 것처럼 만들고 싶다는 야망이 사실 대단하고 특별한 비밀은 아니었다. 우두머리인 대요괴에게 개인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그저 근본에 기반한 이유 없는 바람이란 것이 그러했다. 

 

 때문에 귀시장에 눌어붙어 살기 시작한 이래로는 제 탐욕대로 귀시장마저 판돈으로 따내기 위해 불철주야 일벌레처럼 노력해 왔다. 효율적인 귀시장 관리 방법―이를 테면 노는 녀석들은 자르고 성실한 자들에게는 합당한 상을 내리면서도 유능한 인재를 포섭하는 야무진 인사 관리, 누구든지 납득 가능한 시장의 온갖 수수료, 좀도둑이나 사기꾼이 들지 못하게 막는 탄탄한 시장 관리가 그러했다. 오설상재가 귀시장의 간부가 된 이래로 귀시장의 많은 역사와 규칙이 새로 쓰여졌다고 자타공인, 명실상부하게 말할 수 있을 수준이었으니 그의 야망이 어디를 향하든 오설상재가 귀시장의 중역임을 의심할 자는 귀시장 내부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 자체가 오설상재의 노림수였으니, 이 모든 것이 커다란 먹이를 삼켜 녹여내는 뱀처럼 귀시장을 차츰차츰 좀먹어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다. 자신을 대체할 자가 아무도 없다 싶을 때쯤, 그러면서도 자신의 무릎을 꿇릴 만큼 강한 자가 자기 머리 꼭대기 위에 없을 정도로 힘을 쌓을 때쯤에는 우두머리 대요괴에게 도전해서 합당한 인정을 받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변의 시작은 일곱 번째 호중천 소집으로부터 약 30년쯤 후에 벌어졌다. 1403년, 새로운 태평성대가 도래하여 사황에 웃음꽃이 피고 길거리 배 곯는 걸인들의 이야기가 거의 사그라들었을 무렵, 어느 꽃피는 화창한 날에 우두머리인 대요괴 ‘창량唱凉’은 갑작스레 간부들을 소집했다. 그런데, 누가 창량 아니랄까봐 곡曲소리가 아닌 곡哭소리가 나오게 하는 데에는 도가 텄으니, ‘나, 창량은 귀시장 관리도 질렸으며 나 없이도 귀시장은 잘만 돌아간다. 요즘 따라 잠이 쏟아지는데, 영면―이는 창량의 말버릇 중 하나였다. 낙화나 진정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웬만한 생물들은 죽음을 맞이할 만큼 오랜 잠에 빠져든다는 의미였다―을 취할 테니 귀시장의 우두머리 자리를 이곳에 있는 간부 중 한 명에게 넘긴다고 선언해 버렸다. 

 

 별다른 예고도 없이, 터무니없이 큰 이야기가 터져버리니 간부들 사이에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하지만 이를 단박에 수습해버린 이 역시 창량이었으니, ‘너희들은 모두 믿을 만한 부하들이니, 오늘 모인 자들 중 가장 먼저 이곳에 당도한 괴이에게 귀시장의 우두머리 자리를 주겠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며, 반란을 도모하는 자는 괴이에게 낙화가 몇 번까지 가능한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복운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오설상재였다. 딱히 이유가 있어 먼저 온 것도 아니고 타 간부들보다 특별히 성실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우연히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을 뿐이며 산책을 하던 길이 우연찮게도 대요괴의 거처 주변이었을 뿐이다. 오설상재의 소원은 이토록 터무니없이 쉽게 이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오설상재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자리건만 짐이라도 떠맡듯 손아귀에 들어오고 말았으니 우선은 빈정이 몹시 상했다. 결국 만사 막비명야라더니, 이 자리를 얻겠다며 불철주야 고생했던 일들―예를 들면 밤을 새고 비위를 맞추어 가며 대규모 상단의 거래를 성사시킨 일이나, 힘을 기르기 위해 저 연청까지 몸소 행차하여 호중천에 소집되고 곡옥까지 하사받은 일이 헛고생이 되어버렸으니 어디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오설상재, 아니, 망량주는 온당한 노력의 보상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귀시장의 주인이 되고 싶었지, 이렇게 천운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되고 싶었을 리가 없었다. 숙원을 이루었는데도 기분이 그렇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더러울 수가 없었다. 다만 우두머리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다, 그는 이 명령을 거절할 수 없어 그대로 귀시장의 주인이 되고 말았다.

 

 우두머리가 되고 나서는 오설상재조차 쓰지 않은 채로 뚜렷한 호 없이 귀시장 관리에만 몰두하며 지냈다. 먼저, 귀시장, 도깨비장, 야시장, 심지어는 보따리장이라고까지 아무렇게나 불리던 귀시장의 정식 명칭을 이매망량장魑魅魍魎場이라 이름지었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여러 제도를 개편하니 약 20년간은 귀시장이 그렇게 호황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창 귀시장이 잘 운영될 무렵 망량주는 불현듯 쪽지 하나만을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쪽지에는 너무 틀어박혀 있었더니 답답하다며, 바깥 바람 좀 쐬고 세상 구경도 좀 하겠다고 적혀 있었으니 그 이후의 3년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일탈이고 휴가였다. 3년이 지나자 주역에 이변이 생겨 빨리 돌아와 달라는 전보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망량주는 책임감이 없는 이는 또 아니었고, 귀시장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이도 아니었으니 전보를 받고 주역으로 돌아왔다. 사막에 비구름이 몰려오고 각종 기상이변이 일어나니, 확실히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다. 그래서 망량주는 가만히 있거나 대피하는 대신 이를 수습하고 더 변질될 미래를 막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는 몹시 선견지명이 되었는데, 일찌감치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귀시장의 규모는 반절 이상 줄었을 것이 뻔했다. 물론 피해가 아주 없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 정도면 잘 버텨냈다 위안 삼으면서 망량주는 기민하게 정세의 변동을 파악하며 귀시장을 다스리고 있다.

[호: 망량주魍魎主, 성호城狐]

 과거의 호는 환향이자 오설상재요, 이매망량 귀시장의 주인이 되어서는 성주임이라. 하여 모두가 그를 망량주라 부르기 시작한지도 약 70년 째다. 하지만 암암리에 불리는 이름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호城狐’인데, 이는 성 안의 여우라는 뜻으로 그가 일사천리에 손쉽게 귀시장의 주인이 되어버린 상황을 비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귀시장의 주인 자리가 어처구니없이 넘어갔는데 뒷말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있나. 실은 대요괴가 망량주를 편애해서 꾸민 계략이 아니냐는 둥, 대요괴의 후광 아래에서 호가호위하여 지내는 꼴이 우습다는 둥 그를 시기하거나 못마땅해하는 자들은 차고도 넘쳤다.

 

 그중에서도 유독 심하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예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던 모래 요괴들이었다. 창량의 명령 탓에 대놓고 망량주를 몰아내지는 못했고, 운영 능력으로 자질을 걸고 넘어지자니 그 분야에서의 망량주는 유독 두각을 보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무력으로 주는 망신이었다. 그들은 망량주에게 괴이만의 무투대회를 열도록 사주했고, 망량주도 손님을 끌어모으고 도박판을 열어 판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 대회를 거절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문제는 무투대회 결승전에서 벌어졌다. 모래 요괴들이 여론을 몰아 무투대회 우승자는 망량주와 대련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겠노라고 멋대로 선언해버린 것이다. 망량주는 입지가 그리 굳건하지 않았으니, 압도적으로 이겨야 겨우 본전이고 아슬아슬하게 이겨도 손해, 흡사 패배라도 한다면 귀시장 우두머리의 면이 서지를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어디 거부할 수가 있나? 거절했다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사풍마냥 가라앉지 않으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그리하야 결국 망량주는 승부에 나섰는데, 하필이면 막비명야에서 뽑은 패가 운수대통인지라 우승자를 가뿐하게 이겼는데도 천운으로 이겼다는 말이 관객석 사이에서 오갔다.

 

 그러던 중, 모래 요괴 중 하나가 진정한 우승자에게 기리는 선물이라며 털이 삐죽삐죽하고 꾀죄죄한 검은 여우 한 마리를 망량주에게 선물했다. 온갖 장신구가 달린 화려한 쇠창에 갇힌 검은 여우를 본 모든 괴이들은 바로 누구를 떠올렸을까? 그야말로 성호를 닮은 선물이었으니 어떻게 생각해도 철저하게 조롱할 목적이었음이 자명했다.

 

 결국, 이 날은 망량주의 유일한 굴욕되는 사건으로 남았고 무투대회에 대한 일은 종종 귀시장의 뒷소문으로 흘러다녔다.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면 모래 요괴들의 행방이 망량주와의 은밀한 독대 후 묘연해졌다는 점 정도였겠지만 이를 신경쓸 만한 이는 귀시장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샛노란 왼쪽 눈]

 누가 묻거든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기실 망량주는 모래 요괴 무리의 행방을 아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래 요괴 무리를 낙화시키고 귀시장 밖으로 내쫓은 자가 바로 망량주였으니까. 

 

 애초부터 모래 요괴 무리는 망량주를 몹시 탐탁지 않아했다. 자신들보다 나이도 많지 않고 귀시장에 합류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망량주, 그러니까 오설상재를 마치 불순물처럼 여기고 있었으니 순순히 나가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결국 그들 사이에서는 격한 싸움이 벌어졌으며 망량주는 한쪽 눈을 잃게 된다. 하지만 망량주는 패배한 모래 요괴의 눈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삼았다. 욕망과 욕심으로부터 유래한 요괴였으니 남의 것을 제 손아귀에 넣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모래 요괴는 뭇 괴이들이라면 입에 담기도 꺼려질 법한 저주를 퍼부으며 낙화했지만 망량주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삼은 모래 요괴의 눈을 주변에 과시함으로서 모욕의 대가를 만천하에 알리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비록 이러한 사건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망량주 본인은 그간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내왔었다. 오로지 모래 요괴의 처분만이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그가 귀시장의 주인이 된 일은 자신의 힘만으로 자리 세습을 받지 못해 개인적으로 빈정이 상했을 뿐으로, 결코 수치스러워하거나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래 요괴처럼 과하게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뒷소문은 못 들은 체 하고 넘겼다. 그럴 만한 정도의 아량은 충분히 됐다.

[축제: 류등제瑠燈祭]

 망량주는 남에게 이유 없이 순수한 호의를 베풀 성격이 못 되었다. 그런데도 흉작이 심하게 들어 모두가 굶어 가는 1465년부터는 3년에 한 번씩 류등제瑠燈祭라는 축제를 3일간 성대하게 열었다. 이 시기에 한정해서는 인간도 귀시장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고, 그 누구도 배 곯는 일 없이 축제에 마련된 음식을 무상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밤에는 자그마한 색유리구슬을 단 연꽃 풍등을 올리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이 풍경이 주역과는 상당히 이질적이었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축제의 규칙은 단 하나였다. ‘큰 분쟁을 일으키지 말 것.’ 큰 분란을 일으킨 자는 다시는 귀시장에 발을 들일 수 없었으며, 혹여 그 대상이 인간이었다면 낙화까지 각오해야 했다. 하지만 망량주가 아무런 계산 없이 이렇게 손해만 보는 축제를 손수 준비할 리가 없으니, 혹자는 검은 속내가 있지 않느냐고 의심을 했다. 

 

 하지만 망량주는 옛적에 누군가에게 들은 덕담 값도 할 겸, 이렇게 조건 없는 선행을 베풀어 보면 어떠한 기분일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동문서답만을 늘어놓으니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다만, 결코 순수하게 기뻐 보이지는 않긴 했다.

[요력]

욕망의 한가운데에서 태어났으니 물욕이 큰 만큼 노름으로 얻어낸 돈과 물건을 담아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설상재의 요력이었다. 오설상재는 자신이 가진 물건을 소매 속에 압축해서 담을 수 있다. 압축된 물건은 요력이 되는 한 무게도 부피도 차지하지 않는다.

[상흔]

혼돈을 처음 마주했던 때는 귀시장을 덮친 혼돈에 대한 급한 전보를 듣고서였다. 당시 귀시장에는 다가오는 연례 행사가 내정되어 있었다. 온갖 화려한 장식이 귀시장을 치장하고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무르익을 무렵 시장 한복판에 아수라장이 벌어지니 귀시장의 간부로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시장이 망해버리면 재물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그는 소매 속에 모아둔 온갖 진귀한 물건을 모두 써 가면서 다른 요괴 간부들과 힘을 합쳐 어찌저찌 혼돈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과정 중 목의 반절이 베여 커다란 상흔이 생겼고, 이후로도 큰 목소리를 잘 내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흉터만 좀 남았을 뿐 상처가 모두 나았지만 오설상재는 큰 소리를 내면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 같다고 주장했는데, 기분 탓인지 실제로 상흔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건지는 본인만 알 일이다.


 

[취미·기호]

 1. 노름판에서 비롯된 요괴 주제에 우습게도 사주풀이, 관상, 연인의 궁합 등을 보는 역술 일을 즐겨 했다. 어찌 보면 내키는 대로 뇌까리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하지만 요력이나 환력 따위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말에 살을 붙이다 보니 얻어걸린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의 말이 맞는 건지는 몰라도 결과가 적당히 알맞을 때가 잦았다. 간혹 노름이나 귀시장 건이 아닌 역술 일로도 그를 즐겨 찾는 이마저 있을 정도였으므로 아주 신빙성이 없지는 않아 보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재주로 그렇게 입을 놀리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검은 속내가 있는 것처럼 짓궂게 웃곤 했으므로 그 실체는 알 수 없었다.

 

 2. 화려한 복색을 즐겨 했다. 가시적인 미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지 볼 때마다 의복이 바뀌곤 했다. 눈가의 붉은 연지도 매한가지의 이유였다. 심심해서 해보았더니 없으면 허전하더라, 단지 그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는 공수를 들였다.

 

 3. 식습관이 몹시 독특한 편에 속했다. 그에 대해선 본인은 평범한 축이라 부정했으나 그가 식사하는 것을 본 누군가가 이르기를, 혹여 미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이니 객관적으로 분명 문제는 있었다. 이를테면 온갖 음식에 향신료를 뿌려 먹는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을 꼽자면 제 습관을 타인에게 권유는 해볼지언정 강요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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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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