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 보고 싶거든 삼천 해는 더 살고 오렴. ”


削
삭
5867세|171cm
외관 나이 20대 후반



길게 늘어지는 흰 머리카락의 끝은 도화색. 왼쪽 관자놀이 위로는 나뭇가지가 자라나 복숭아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있다. 그러나 그 화사한 생김새와는 달리 그의 주변에서는 불길함이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얼굴을 가린 반투명한 천 탓일까. 아니면 그 아래로 희미하게나마 비쳐 보이는, 즐거움을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미소 탓일까. 어쩌면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면사 아래로는 검은색을 기조로 하여 지어진 의복이 있었다. 목 아래, 손끝을 제외하면 발끝조차 보이지 않는 긴 옷자락. 종종 길게 늘어진 치맛자락 아래로 나무뿌리 비슷한 형체가 보이는 일도 있었다. 어느 정도는 나무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다만 편의를 위해 인간의 모습을 취할 뿐이다.




환력






보제


과거에는 제천祭天, 현재는 파천破天이라 불리는 나뭇가지.
그것은 삭이 도화나무에 기운이 모여 태어난 존재이자 도화나무 그 자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다. 가장 동쪽에서 난 가지는 그의 분신이며 그 자신이었다. 원래 나뭇가지의 형태를 띤 보제를 평소에는 귀걸이의 형상으로 만들어 착용하고 있다. 전투 시에는 부채, 혹은 채찍의 형태로 만들어 다루었으니 보제와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보제를 다루는 것 또한 자유자재라 할 수 있었다.




성격


강압적인|기분파|무료함|탐욕스러운
강압적인
“거부하지 말거라. 나는 자비로운 존재가 아니란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하려는 성격이다. 물건, 목표, 사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얼핏 듣기에는 괜찮아 보일지 모르나, 그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태도는 독선적이며 강압적이라 느껴질 테다. 물건은 빼앗고,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원하는 존재는 곁에 두어야만 했다.
신령이던 시절에 떠받들어지던 흔적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렇다면 그의 태도는 타고 태어난 천성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오히려 그 시절을 기억하는 누군가는 ‘그 시절에는 내숭이라도 부렸다’라고 말하니 요괴로 변하며 타고 태어난 기질을 숨기지 않게 된 것에 가까웠다.
기분파
“왜 이런 걸 준비했지? 내 어제는 좋다 말했다고? 그건 어제 일이지 않느냐.”
바로 전날에 좋아했던 것을 다음 날에는 싫다 말하기도 하고, 직전까지 하던 일조차도 금세 질려하는 이였다. 심지어 기분마저도 여름날 소나기 오듯 좋아졌다 말았다 했으니 그를 대하는 일은 단연 까다롭다 할 수 있었다.
심지어 기분이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편차가 심한 요괴였다. 기분이 좋을 때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어주기도 하고, 마음이 내키는 일이라면 자기 기준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쁠 때는 온갖 일을 망쳐놓아야 마음이 풀렸고, 만나는 존재마다 면전에 대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무료함
“질리는구나. 다른 소일거리를 가져와 보렴.”
오래 산 존재에게 무료함은 어쩌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는 보통 오래 살았다 일컬어지는 괴이들보다도 더 길게 이 세상에 존재했기에. 어딘가에는 그보다 더 오래된 존재가 있을 것이나 그런 괴이를 자주 만나기란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일까, 그는 언제나 창현국 곳곳을 돌아다니고는 했다. 찾을 것이라도 있는 존재처럼. 종종 흥미로운 일에 대한 풍문을 들으면 누구보다 먼저 그 지역으로 향하기도 했고, 여행길에 만나는 게 누구든 자신의 흥미를 채워준다면 선물을 건네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이 분란을 만들기도 꺼려하지 않으니 환영받기는 어려웠지만 말이다.
탐욕스러운
“재물과 감주는 얼마가 있든 넘침 없이 좋은 것이란다.”
오래 살았는데도 가지고 싶은 것이 그리 많은지, 그는 욕망을 드러냄에 망설이는 일이 없었다. 심지어 그 욕심이 종종 사람에게까지 향했으니 그에게 ‘가지고 싶은 것’이 되는 일이야말로 천재지변이라 하겠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가면을 쓰고 한없이 다정하게도, 친절하게도 굴 수도 있었다. 아마 법과 규칙이 없었더라면 악인이라 불릴만한 짓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황룡이 정한 규칙을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귀찮아질 것이 불 보듯 뻔했으므로.
그러나 반대로 말하자면 법과 규칙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않는 선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게 누구의 마음을 다치게 하든, 어떤 손해를 입히든. 그 탓에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도 종종 있었다.




기타


호
보석, 술, 복숭아, 자기 자신
불호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전부
기원
학유의 깎아지른 산맥 중에서도 가장 험준한 곳. 암석 사이로 가려진 땅이 삭이 태어난 장소였다.
본디 학유의 눈과 바람에 스러져야 했을 작은 생명. 그러나 운 좋게도 자연의 기운이 모이는 땅 위에 피어난 존재는 눈보라 속에서 생을 잃는 대신 커다란 나무로 성장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세월이 흘렀을까. 그간 바깥 세계에는 괴이와 인간, 신령과 요괴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생명체 간의 다툼에 지쳐 산맥 깊숙한 곳으로 갈등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이들도 존재했다. 그런 이들에게 눈보라 속에서도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는 복숭아나무와 비교적 안온한 기후는 마치 도원향과도 같이 느껴졌으리라.
그러니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신비가 당연하며 믿음에서 신령이 태어나는 일은 일상인 시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공동체를 이룬 이들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동시에 숭배할 대상을 필요로 했고, 어느새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 나무는 신앙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도화나무에 신앙이 모이니, 신령 비사苤俟. 미래에 삭이라는 요괴가 될 괴이의 탄생이었다.
마을, 연淵
사람이든 힘 약한 괴이든 그 모두가 평등하게 의견을 나누고 발전시켜나가는 마을. 채석장에서 돌을 캐 유지하던 마을은 신령이 있는 덕분에 안온한 기후를 가져 작게나마 농사까지 지을 수 있는 평화로운 장소였다.
그렇게 북부의 도원향으로 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태어난 신령은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인간을 그리 사랑하지 않았다. 싫증마저 잘 내니 금세 본체인 나무를 두고 의태하여 바깥을 나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니 신령이 거하지 않는 도원향은 어떻겠는가. 본체라 할 수 있는 나무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핵이라 불릴 신령이 존재하지 않으니 마을에 맴도는 신력 또한 약해져만 갔다. 추워지고, 농작물이 죽어가고, 끝내는 큰 눈사태마저 막지 못했다. 밭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이고, 채석장으로 가는 길은 막혀버렸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마을을 떠나야 했다.
백란 571년. 마을의, 신앙의 끝이었다.
연인
백란 536년, 그즈음 비사의 낙은 근처의 도시 상벽霜罷에 방문하는 일 정도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그곳에서 비사가 자신의 운명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상벽 제후의 아들, 유현流現과의 만남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곤경에 처한 그를 유현이 구했고, 이야기에 나오는 연인처럼 둘은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의 일생동안 연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마을이 눈에 묻히고, 자신을 향한 신앙이 약해지다 이내 끊어져 곧 요괴로 화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나 괴이와 인간의 사랑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나는 법이다. 타고 태어난 수명의 차이, 종족의 차이. 비사와 유현의 경우에는 종족이었다. 괴이를 싫어하는 유현 앞에서 비사는 언제나 인간이었고, 석공의 딸이었으며, 유현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상벽 제후가 된 유현이 사망하는 순간까지도. 그러므로 유현의 무덤 옆에는 ‘인간 비사’의 무덤이 함께했다.
유현의 죽음과 함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력을 전부 소모했다. 그리하여 요괴가 된 존재는 자신의 호를 삭이라 바꾸고 떠돌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본체인 나무 채로, 인간 모습으로 화하여.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않고.
몇 번이고 유현의 환생을 만나 사랑하고, 그의 죽음 뒤에는 다시 떠돌았다. 그러므로 삭이 어딘가에 정착한 순간은 유현의 환생을 만났을 때 정도였다. 어쩌면 누군가는 들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환생을 찾아다니며 사랑하는 요괴의 이야기를. ‘요괴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연인을 사랑하던 인간의 이야기를.
호중천
그의 환력은 유현의 환생을 구하기 위해 입은 상흔에서 비롯된다. 비록 몸은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하나 혼돈의 영향이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지워 없앨 수 없는 종류의 상흔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500여년 전, 그는 황룡에게 환력을 받게 된다. 그 이후 세 번의 부름을 받았고, 그는 전부 소집에 응했다. 성격과는 참으로 맞지 않게도.
그러나 삭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묻힌 세계는 사랑스럽고, 세계가 유지되어야만 유현의 환생을 만날 수 있다. 유현의 환생을 기다리는 중에도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 즐거움이란 것이 다른 존재의 시련이 되어 괴로움을 주는 일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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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다. 명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 자신의 생각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듯 자신감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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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로 오래 지냈음에도 힘이 성장하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나무는 원래 느리게 자라니 이게 당연한 일이라 삭 본인은 말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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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복숭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가 열매 맺는 복숭아를 먹으면 고뿔 같은 가벼운 병 정도는 낫는다고. 신령이던 시절에는 마을을 위해 마을사람의 숫자만큼 피워내던 선도仙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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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봄과 같은 공기와 복숭아 향이 맴돈다. 그의 기원은 복숭아나무이기도 하지만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 그 자체이기도 하므로. 물론 향도, 공기도 본인의 의지로 조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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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해골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기척에 예민한 이였기에 그 모습을 본 존재는 거의 없다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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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낙화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