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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바라는 일은 모두 이루어져야만 한단다. 그리 정해져 있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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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월

5967세|171cm

​외관 나이 20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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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모습은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거의 동일하다. 얼굴을 가린 면사, 검은색을 기조로 하여 지어진 의복. 그의 머리 위에서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는 도화나무의 가지까지. 그러나 머리만큼은 이전보다 더 희게 변한 듯싶었다. 마치 요력이 강해질수록 희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머리카락은 그가 대요괴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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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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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살桃花杀

삿된 기운을 몰아내어 치유한다.

 

상처나 질병 등 생명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들에는 소위 액운이라 불리는 삿된 기운이 깃들기 마련이다. 하물며 혼돈의 옷자락이 남긴 상처는 어떠할까. 그리고 누월, 그가 받은 환력은 그 기운을 보고, 보제를 휘둘러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회복을 방해하던 액운이 사라지면 당연하게도 상처는 좋아진다. 때로는 걸을 수 없던 자가 걷게 되기도 하고, 질병이 낫기도 하며 상처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듯 보이는 능력은 가히 황룡이 질서를 위해 내려준 이적이라 하기 충분했다.

또한 이 환력을 반대로 운용할 수도 있었는데,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은 당연하게도 마수에게 위협이 되었다. 그가 보제를 통해 질서로 돌려보낸 마수가 몇인지 아마 셀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액운을 몰아내는 것에 아무런 대가도 필요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보제에 생명력을 담아야 했다. 생명력은 근처의 식물에게서 끌어올 수 있었으며, 식물이 없다면 스스로의 생명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단,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생명력은 식물이나 자기 자신에 한정되었고, 조금이라도 지성이 존재하거나 동물에 속한다면 생명력을 끌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것. 이미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있는 소우주에 간섭하는 것은 황룡이 내려준 힘의 파편이 있다 해도 어려운 일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는 늘 식물이 없는 장소에서도 환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식물이나 식물의 씨앗을 들고 다니고는 한다.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한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 수복되겠지만, 자신을 아끼는 그로서는 남을 위해 그런 방식의 희생을 하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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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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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제천祭天, 현재는 파천破天이라 불리는 나뭇가지.

그것은 누월이 도화나무에 기운이 모여 태어난 존재이자 도화나무 그 자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다. 가장 동쪽에서 난 가지는 그의 분신이며 그 자신이었다. 원래 나뭇가지의 형태를 띤 보제를 평소에는 귀걸이의 형상으로 만들어 착용하고 있다. 전투 시에는 부채, 혹은 채찍의 형태로 만들어 다루었으니 보제와 함께한 세월이 긴 만큼 보제를 다루는 것 또한 자유자재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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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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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인|기분파|탐욕스러운|예민한

그는 여전히 자신이 옳다 생각하며 누군가를 내리누르려 한다. 쉬이 질리기도 하며, 무료하여 온갖 보기 좋은 것을 제 손아귀에 넣으려 하기도 했다. 고압적이며 오만한 존재는 백 해가 지났으나 변할 기미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육천 해에 가깝게 살아온 괴이에게 백여 년이란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100년 전보다 예민해져 날카로운 반응을 자주 보인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내키면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도 여전하다. 비틀린 조언이라 해도 건네기를 망설이지 않는 부분마저 그대로이다. 그러나 이전보다 더욱 갑작스레 화를 내거나 입을 다무는 일이 잦아진 것이 그를 증명했다. 특히 반려, 유현에 관련한 일. 혹은 연인이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한두 번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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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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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술, 복숭아, 자기 자신

불호

자신의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전부

 

연인

연인의 환생을 다시 만나는 데에 보통은 삼백 해. 늦으면 오백 해. 아주 오래 걸려도 천 해를 넘긴 적 없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이제 육백 해 전. 그래도 아직 천 해는 지나지 않았는데, 그는 연인의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하게 굴고는 했다. 마치 듣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그렇게 초조하다면 곡옥을 쓰면 될 것이다. 연인을 살려낼 수는 없으나 연인의 환생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나 그는 고집스레 곡옥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군가 어찌하여 곡옥을 사용하지 않느냐 말한다면 ‘운명이라면 곡옥이 필요할 리 없다.’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으니 그야말로 고집이라 할 수 있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북방의 눈이 녹고 남방에 끝없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 무렵. 소문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다만 그 나무는 한 장소에 있지 않고 갑작스레 어딘가에 나타날 뿐이니, 발견하거든 반드시 소원을 빌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리하면 그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나 불행 또한 같이 받게 될 것이라는 풍문마저 떠돌았다.

 

당연한 일이다. 그 나무는 누월이 자신의 힘을 잘라내어 피운 나무이며, 소원을 들어주는 주체 또한 누월이었으므로. 그러나 이 괴이가 좋은 방향으로 소원을 이루어줄 리 없으니 소원을 빈 이가 소원이 이루어졌으나 불행 또한 같이 받았다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신앙이 쌓여 신령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재물을 달라 하면 귀하나 구하기 어렵고 위험한 곳에 있는 약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병을 낫게 해달라 하면 액운을 가져가 그 액운에 딸린 병을 다른 이에게 옮겼다. 그 외에도 모든 방식이 비틀려 있으니 그중 몇몇이 잘 되어 소문을 퍼트렸다 해도 신앙이 쌓이기에는 모자랐다. 거기다 누월이 할 수 없는 일을 소원으로 비는 이가 있으면 나무를 거두어들여 응답조차 하지 않았기에 혹자는 그저 뜬소문이거나 괴이의 장난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니 누월에게는 다행이었다 할 수 있겠다. 혹은 의도하였거나.

 

하여 왜 그런 일을 하느냐 묻는다면 들을 수 있는 건 심심풀이라는 답일 것이다. 창현국이 어지러우니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다 하면 그곳을 찾아온 인간의 온갖 모습을 볼 수 있었으므로.


 

기타

  • 언제나 권위적인 태도를 보인다. 명령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

  • 초아의 초목은 새순을 내지 아니하나 그는 여전히 복숭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복숭아는 그의 요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따스한 공기와 복숭아 향이 맴돈다. 백 년 사이 복숭아 향이 더욱 짙어졌다.

  • 혼자 있을 때에도 해골을 꺼내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럴 시간이 없다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쉬지 않고 창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므로.

  • 백 년 사이에도 낙화는 겪지 않았다. 앞으로도 겪을 일은 없지 않겠느냐 종종 이야기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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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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