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할아버지?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좋아. ”

藤花
토우카
5889세|188cm




곧게 떨어지는 하얀 머리카락 끝에는 옅은 보랏빛이 흐리게 퍼져 있다. 이제 머리카락은 허리를 덮을 만큼 길게 자라있는데 늘상 하나로 묶어 올려 고정해둔다. 눈동자는 여전히 짙은 보랏빛으로 자수정을 깎아 박아놓은 듯한 색상이며, 피부색이 옅은 탓에 전체적으로 눈만 강렬하게 돋보인다.
훤칠한 키에 비해 말라 보이는 인상. 다만 몸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근육들이 꽉 들어차 있어 실제로는 보이는 것만큼 허약하지는 않다. 손발이 크고 도드라진 관절들이 고운 얼굴과는 대비를 이루는데, 특히 손은 부드럽다기보다는 거칠고 굳은살이 곳곳에 박힌 감촉인데다 자세히 보면 옅게 흉이 남아있어 손만 보았을 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간소한 차림새이나 어째서인지 오비만은 폭이 넓고 무늬가 들어간 것을 즐겨 고른다.


@NRU_Sinari님 커미션


환력


환향의 숲(幻香の林)
「짙게 퍼지는 등꽃의 향기는 상이 눈에 채 맺히기도 전부터 그가 왔음을 선언한다. 지면을 가르고 솟아나는 덩굴과 그 위에 피어나는 싱그러운 풀잎, 그리고 꽃은 그 다음이며 우아한 걸음걸이는 가장 마지막에 당도하였다.」
본디 그의 신력이란 본신의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허상의 나무를 불러내어 부리는 것, 그리고 나무와 숲을 둘러싼 것들과 소통하는 것. 그러나 특별하지도, 특출나지도 않던 신력에 환력이 더해지자 그가 가진 힘은 몹시도 공격적인 형태를 띠게 되었다. 구불거리며 자라나는 등나무는 날카롭게 벼려진 창이자 아군을 감싸는 성벽이 되었고, 보다 짙어진 향내는 적의 눈을 가리는 동시에 살아있는 것들의 힘을 북돋아주었다. 또한 가진 바 힘을 보제에 깃들게 하면 명검을 뛰어넘은 신검이 되었으니 베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토우카는 제 신력과 환력을 꽤나 마음에 들어했으며 전투 외적인 상황에서도 곧잘 사용했다. 나무 줄기는 종종 의자와 탁자가 되었고, 무성한 나뭇잎은 따가운 햇살이나 비를 막아줄 지붕으로도 쓰였으며, 종종 어린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보드라운 꽃잎을 피워내기도 했다. 기실, 그는 싸움을 위해 힘을 쓰는 것보다는 아이의 웃음 하나를 보려고 힘을 쓰는 쪽을 더 좋아하였다. 어린아이가 근심 없이 웃을 때야말로 진정 태평성대라 할 수 있었으므로.




보제


그의 보제는 변함없이 기다란 타치(太刀)형태를 띠고 있다.
날 길이만 90cm가량 되는 커다란 칼의 칼집과 손잡이는 한 차례 새로 제작을 했으나 생김새는 100년 전과 꼭 같다. 등나무로 바탕을 만들어 흰 옻칠을 했으며, 덧댄 쇠붙이는 금빛이다. 흰 실을 감고 그 위에 짙은 보랏빛 천으로 매듭을 묶어 놓은, 화려한 이토마키타치 코시라에. 흰 칼집의 표면에는 주인 된 자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격


느긋한 · 다정한 · 때로 짓궂은
글쎄, 신령의 성격은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말투만 조금 바뀌었다뿐이지 속알맹이는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는 여전히 걸음걸이 하나 급히 옮기는 법이 없었고, 주변의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기 일쑤였으며, 꼭 중요한 일에만 행동이 빨랐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어린 것에게 다정한 성정도 여전했다. 또한 때때로 짓궂게 굴어 어린애들을 울리는 면도. 그래서 아오나미에서는 ‘큰 할아버지’가 또 애를 울렸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의 모습이 곧잘 포착되곤 했다.




기타


❖ 藤花
好: 밀주密酒, 다과, 숲, 여행
不好 : 마수와 혼돈, 짠물
그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선명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매여있던 곳을 떠나 타지에 방문하기를 즐기게 되었다는 점 뿐일까.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때로는 쓸모없어보이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사서 그를 기다리는 이들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 요 근래 그에게 새로이 생긴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 藤木林の主
숲 한가운데 자라난 등나무의 신령. 근원의 영향인지 항상 등나무꽃 향기가 주변을 떠돈다.
기원이 된 등나무는 어찌나 거대한지 높이가 10척이 넘고, 둘레는 사람 넷이 모여도 다 감싸안지 못할 만큼 두껍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의 폭은 대저택에 준할 정도로 넓어 한눈에 헤아리지 못할 정도이며, 어느 날이고 연보랏빛 등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주변을 감싼 숲에서도 등나무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는 모두 그의 가지에 맺힌 씨앗에서 싹튼 나무들이다. 따지고 보면 토우카가 그 등나무들의 어버이인 셈.
일설에 따르면 그의 본신은 명엽의 동쪽 끝, 수목이 울창한 숲에 큰 불이 일었을 때 유일하게 홀로 살아남은 나무라고 했다. 그것을 목도한 인간이 잿빛 속에서 홀로 선 나무를 영험히 여겨 신당을 세우고 매 해 공물을 바친 것이 신령 토우카와 슌코우 신사의 기원이다. 허나 이는 신령이 태어났을 때로부터도 한참 전의 일이라, 당사자인 신령조차도 설화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다는 듯하다.
본래 날벌레나 작은 동물이 많이 찾는 나무에서 맺힌 신령이기 때문일까. 토우카는 벌이나 나비, 숲의 동물같은 것들과 퍽 친하게 지내곤 했다. 벌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고, 나비는 곧잘 그의 손길을 탔으며, 다람쥐 혹은 사슴들은 그의 곁에서 쉬다 가고는 했다. 그는 신력을 사용해 자신의 의사를 작은 미물들에게 손쉽게 전할 수 있었는데, 대화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미약하나마 서로간에 뜻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이라 인간과 자연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도 종종 맡곤 했다.
❖ 春香神社
동부의 해안선 한 구석에 자리잡은 마을. 괴이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그 마을에는 아오나미靑波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곳은 구성원 전부가 같은 성을 쓰는 집성촌으로, 외지에서 들어온 몇몇을 제외하면 모두가 하나미치花道라는 성을 쓴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의 복판에 세워진 것이 슌코우春香 신사. 신령 토우카를 모시는 사당과 신사를 돌보는 신직 여럿이 머물 숙소, 참배객을 위한 쉼터 등 건물 여럿이 모여있는 형태는 커다란 저택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신사에 신령이 기거하는 시간은 몹시도 짧았다. 등나무가 심어져있기는 하나 신령의 본신은 아니었다. 신령의 본신은 여전히 동쪽 끝 작은 섬에 있으며, 그를 둘러싼 숲이나 신사, 마을의 옛 터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신령은 한 해 중에 석 달은 여행을 다니고, 여섯 달은 육지에서 자신의 신도들과 함께 보내며, 나머지 석 달은 섬에 들어가 지내곤 했다. 덕분에 마을에서는 신직 몇 사람을 섬으로 보내 신령의 본신과 옛 신사를 꾸준히 돌보게 했다.
번거롭고 불편한 생활이었으나,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명엽의 바다가 더이상 마을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게 되어버린 후로 아오나미는 육지로의 대 이주를 결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령의 본신인 커다란 등나무만큼은 어떤 수를 내어도 온전히 육지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때문에 옮길 수 있는 것만 옮기고, 남은 것은 꾸준히 사람이 오가며 돌보게 된 것이다.
아오나미의 사람들은 육지로 나오게 된 이후로 인근의 마을과 자주 교류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연청으로 이주한 이들도 몇 있으나 대부분은 멀리 떠나지 않고 정착해 살았다. 신령의 힘 덕분인지 마을 근방의 땅에서 적게나마 소출이 있었기에 크게 배를 곯는 이는 없었다.
❖ 壶中天
백 년 전, 신령은 황룡에게 받은 곡옥을 써서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물 위로 떠오르게 했다. 큰 섬까지 배를 타고 갈 일이 없어지자 아오나미의 생활은 이전보다 조금 더 편리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신령에게 크게 감사하였다.
그리고 백 년이 지나, 아오나미 마을은 육지로 옮겨올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사람들의 등을 떠밀었다. 신령은 어렵게 새 터전을 일구는 사람들을 보며 몹시 안타까워하였고,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부족하지는 않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였다.
황룡의 부름을 받고 곡옥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곡옥으로 마을 근처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면 적어도 매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 落和
이것은 신령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마수 한두 마리쯤이야 환력으로 손쉽게 처리하고는 했기에 방심했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칼끝이 무뎠을 수도 있고, 아니면 등 뒤의 인간들을 지키느라 제 몸까지 지키기에는 힘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신령 토우카는 한 번 의식의 끝을 맞이하였다. 신령의 핵이 존재를 회복하는 동안 아오나미의 등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그리고 꼭 십 년이 지난 어느날, 다시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남과 동시에 토우카는 새로이 눈을 떴다.
잃은 것이야 많았다. 신령은 낙화 이전의 자신을 온전히 동일한 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기억이야 남아있었으나 그것은 타자의 삶을 책으로 읽은 것과도 비슷한 감각이었다. 때문에 그는 낙화 이전의 신령을 종종 ‘이전 대’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 말고는, ‘신령 토우카’의 존재를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에.
허나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는 법. 신령의 힘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신력뿐만 아니라, 환력도. 이 힘이 있다면 마수에게 쉬이 당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