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 이리오련. ”



부드러이 웃는 존재의 시선 안온하다. 웃음에 깃든 다정함. 나붓하게 휘어지는 눈매, 다감한 목소리. 디딘 것 적시는 물결.
은빛 파도가 휘몰아친다. 하얗게 메밀꽃 피어난다.
비유적 의미로도, 직관적으로도 퍽 어울리는 문장인 까닭은 그의 길고 풍성한 은빛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끝으로 향할수록 스스로 파도치는 물결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끊어지지 않고 부서지는 포말. 평범한 머리카락이었다면 땅에 이리저리 끌렸을 테지만 끝이 일정치 않은 모습으로 부서져 가기 때문에 걷는 걸음마다 물 자국이 선명히 남다가 햇빛에 말라버린다. 온화하게 휘어진 순한 눈매, 아침 햇살 받은 푸른 바다의 색을 담은 눈동자가 따스함을 담은 채 반짝였다. 쌍꺼풀진 눈매와 긴 속눈썹, 앞머리에 가려진 반듯한 이마와 부드러운 눈썹, 그리고 곧은 콧대와 얕은 미소 띤 입술까지. 우아하게 웃는 낯에 깃든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언뜻 보기에는 그 머리카락 제외하면 인간과 다를 것이 없다. 하얀 낯, 마른 팔다리를 지닌 인간과 말이다. 푸르게 흐트러지는 옷자락의 풍성함은 큰 전투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에게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푸른 대수삼과 허리춤에 장식 달아 고정한 치마. 별다른 신은 신지 않은 까닭은 그런 것의 필요성을 모르기 때문. 얇고 풍성하게 퍼지는 그것과 길게 흐트러지는 머리카락. 움직일 때마다 파문 인다.




환력


수형호 (水形护)
그러니 파도쳐라. 이곳에 닿지 않도록.
간단히 요약하자면 물을 다루는 것.
그에게 퍽 잘 어울리는 그것은 물로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넓은 장막, 날카로운 창, 때로는 수많은 얇은 화살. 파도치다가 만들어내는 것으로서, 고정된 형체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단단한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형태를 갖춰 단단한 것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무기부터 방패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회오리로 이뤄진 창이 적을 뚫고, 갈고리 되어 움켜쥐어 조여낸다. 그것을 만들어 뻗어낼 수 있는 곳은 그가 자각하고 있는 공간 내, 즉, 안다면 문제가 없는 것이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 만든다는 것은 그곳에 다른 변화가 생겨도 곧장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니 하지 않는다.
허나 그가 가장 강하게, 그리고 뛰어나게 운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도 그 파도 너머의 이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간단하게는 투명하여 너머가 보일 정도의 장막으로 막아내고, 날아드는 것에 맞춰 다른 이들이 다치기 전에 그것을 막아 다른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단단함도, 범위도, 실상 공격보다는 방어에 더 치중되어 있다. 때때로 단순히 날아오는 것을 막는 것 아니라 움직임 봉쇄하는 방향으로 묶어냄으로써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흔들림으로, 때로는 막으로, 때로는 다른 것으로. 직접적인 타격보다는 자신보다 더 뛰어나게 할 수 있는 이들이 나설 수 있도록.




보제


현재에는, 그러니까 지금의 모습은 허리춤에 달린 장식이 바로 보제였다.
폭포를 거스르는 물고기와 같이 있는 그것.
사실 그것이 가장 많은 모습을 하는 것은, 그가 수중을 다니기 때문에 나는 지느러미에 둥글게 감싸이는 일종의 팔찌나 보석 엮어 감싼 장식물과 닮은 형태이다. 움직일 때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형태를 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주 가끔 무기의 형태를 취할 때도 있었는데, 사실 그마저도 무언가를 지키기 위하여서인지 방패의 형태를 한 것을 본 이가 대다수라고 한다. 별다른 꾸밈도, 장식도 없다. 오로지 그 기능에만 치중한.




성격


넘치는 다정/ 강강약약 / 취향이 나쁜?
맨발로 파도 딛는다. 언제 녹아 사라질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그는 어디에나 존재하였고, 반드시 곁에 있었으니.
녹아 사라진 포말, 그러나 물 자국 말라도 존재하였음에는 변하지 않는.
그 자리에 선명히 존재하는 다정의 흔적.
초장. 넘치는 다정 / 안온한 / 여유로운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련?"
이곳에는 원양님이 오실 때면 반드시 거치는 하나의 일정이 있는데, 그건 계시지 않던 사이에 있던 일에 대해서 보고드리는 것이에요! 언제나 우리 이야기를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시며 귀담아들으시고, 때때로 웃음 흘리실 때의 낯에 한가득 든 애정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어요. 그만큼 우리를 아주 좋아하시는, 그렇기에 하나하나 신경 써주시고 안아주시는 분이시니까요!
낯에 한가득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은 이는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니? 하며, 다감하고 애정 그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는 투 잔잔하다. 그는 목소리 하나 높이지 않는다. 언제나 조곤조곤, 부드러이 말하는 따스함. 쉬이 싫은 소리 하나 내뱉지 않는다. 언제나 온화히 손 내미니, 서두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단다, 천천히 해가도. 이미 살아온 시간 천 년이 훌쩍 넘었으나 그런데도 세상은 부딪히다가도 나아가니 하루하루의 다급함에 부딪혀 쓰러지기엔 지치지 않겠냐며 말이다. 세상 이루는 것, 어떻게든 버텨내고자 하는 것, 이겨내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살아가는 것. 그런 것들 중 사랑스럽지 않은 것 없다. 그것을 담을 때면, 그는 꼭 온갖 것 품은 채 내어주는 바다를 쏙 빼닮은 것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살아가는 것이 있다. 품에 들어온 것이 그 일부로 죽게 만들지 않았다. 그저 함께하는 것. 친애하는 생명에게, 살아가는 시간의 한 자락을 함께 해보자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조각 하나마저 놓지 않을, 그 조각에서 살아가는 자.
중장. 강강약약 / 때론 가장 낮은 / 미묘한 선
"아니, 다만 받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란다. 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로구나."
약한 이들에게 약하시고 강한 이들에게 강한 분이시지요. 함부로 대한다거나 가여워 아량을 베푸시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약하기에 어찌 대할 줄 몰라 조심하는 것과도. 그보다는… 어쩐지 편안히 웃으시는 느낌이지요. 그러고 보니, 가끔은 누가 봐도 강하다거나 높으신 분들에게 묘하게 선을 그으시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기분 탓이려나요?
연약하다 못해 하찮다 여겨질 만큼 작은 것, 낮은 것, 약한 것, 불안정한 것. 그런 것들보다 더 약해지는 것. 때때로 아주 낮은 것이 된다. 그것이 되길 자처할 때가 있고, 그런 때 가장 편해하는 낯이 있다. 옅게 걸린 웃음, 어쩐지 긴장을 푼 것 같이 다만 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해하는 것. 그것은 베풂과 결이 달랐는데, 아량을 베푸는 것이 위에서 올려다보는 자의 여유라면 그는 다만 더 아래에서 괜찮으면 가져달라며 손에 조심스레 쥐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도 아니면서 어떻게든 해주려는 이들을 보았는가? 그럴 시간에 자신을 더 챙기지 미련스레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 그런 이들과 비슷하다. 적어도, 그런 순간에는. 허나 이미 지닌 것 있는 이들, 강하거나 권력자이거나, 그런 이들에게는 묘한 거리를 두고 대하였다. 기본적인 다정함 사라지진 않으나 굳이 자신이 있지 않아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뭐…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그런 이들은 스스로, 혹은 본래 곁에 둔 이들로 이뤄가니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가진 이들보다는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로 다가간다.
종장. 취향이 나쁜? / 때때로의 방관 / 그러나 묻힌
"옛날 일이란다. 끝난 것들과 함께한. 후후…"
가끔 홀로 허공 보실 때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선을 하곤 하세요. 어디를 보는 것인지, 어느 시간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눈으로 돌아보실 때면, 굉장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서 멈칫거리게 되어요. 때때로 뭍에서 퍼덕이던 물고기를 볼 때도 그러하셨죠. 아무런 것도 못 느끼시는 것처럼... 그, 그런데 이건 저도 잘 몰라요! 당신께서도 옛날에는 진짜 그러셨다며 허허로이 웃곤 하신 거니까…… 그, 런 시절이 있으셨던 건가?
그런 때가 있다. 아무것도 없을 때 홀로 허공 더듬어 올려다보는 시선에 담긴 싸늘함. 드높은 위용 자랑하는 것이 무너지고 흔들리며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움직이는 이들 사이에서 홀로 움직이지 않는 방관. 아니, 가끔은 미소를 지은 것도 같다. 그것은 보기 힘든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서 대부분은 무엇이라도 해보려는 이들과 함께 해왔기에 더더욱 드문 것이지만,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정점을 찍은 순간 무너진 것을 볼 때면 특히 그러했다. 제 잘난 줄 아는 것의 최후를 유심히 바라보는 때의 침묵. 그럴 때면, 다감한 낯의 주인이 어찌 그런 눈을 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지고는 했다. 말을 붙이면 언제 그런 눈을 했냐는 듯이 사르르 녹아버리는데도. 그것이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은 마주한 이가 가장 잘 알게 만드는데도. 뭐… 그래도 그만한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이제 저것도 보기 어려운, 때때로 얕은 흔적으로나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밟으면 그대로 으스러지는 여린 풀잎, 그러나 꺾인 뿌리, 뭍에선 살 수 없음에도 휩쓸려 떠내려온 물속의 생명, 오래된 고목의 최후. 약하디약한 생명이 끝난 순간, 혹,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것이 최후를 맞이한 때.




기타


[ 원양 ]
아홉 번째 달, 보름이 지난 다음 날. 사람들의 기도에 쌓인 신앙 속에서 태어나 자연의 일부가 된 자.
종족은 요괴.
나긋한 어투, 목소리 높낮이 거의 달라지는 것 없이 온화하다.
말투 또한, 마찬가지.
[ 바다의 요괴 ]
파도치는 머리카락 제하면 인간과 다를 것 없으나 그의 장소인 바다 안에서는 모습이 달랐다. 시간과 힘 흐르며 편안한 모습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에 가까울 것이다. 뺨의 비늘과 귓가에서 길게 퍼지는 지느러미. 녹은 듯 옅은 물결로 보이는 하반신과 머리카락의 끝자락. 굳힌 것 물속에서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깊이 들어간다면 그 모습 굳이 비유하면 거대한 고래와 비슷해진다. 언제든 녹아내릴 것만 같은.
그는 바다 내를 중심으로 물길 닿는 곳 따라 흘러가곤 했다. 주로 동부의 해안이나 섬에 모습을 보였지만, 때로 남으로, 때로는 북으로. 때로는 더 먼 동쪽으로 가다가 무엇을 봤는지 알 수 없는 때에 돌아온다. 바닷길 따라 다른 이들 만나기도 하다가 다시 섬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거의 살지 않고 가끔 외부에서 다른 이들 오는 섬. 그마저도 그의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그나마 반드시 돌아가는 곳에 가까운 것이다.
한때 신령이었으나 요괴로 화하였다는 것은 그 연배의 이들이라면 알만한 이야기.
[ 작은 섬의 보호자 ]
동부에 자리한 여러 섬 중 하나, 아주 작은 그 섬에 부모 없는 인간 아이들이나 아직 어린 요괴가 있는 경우 허다했다. 얼마 없는 인원은 그들이 차지한다. 신령이야 신앙에서 태어나고 그 자리 떠나지 않으니 그가 거두는 일 없다. 작고 작으며, 주변에 보호해줄 것 없는 이들임이 파악되면 그가 거두었다 스무 살이 되는 해 내보냈다. 그전까지 그가 살아오며 익힌 것 가르치다가, 근방의 마을에서 일하는 것 보며 적응하게 해주다가. 그는 섬 떠나 있는 일 많았기에 실제로는 거주지를 내준 것에 가까운 것이다. 의사조차 표할 수 없는 아기를 데려오는 일 드물고 -그마저도 정말 피치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그러했고,- 대부분은 권한 뒤 받아들이면. 그 때문에 대부분이 인간이다. 수호받고 있음에도 자잘한 세상 속에는 차이가 있기에. 슬슬 어리진 않은 요괴면서, 때때로 섬의 아이들에게 혼나기도 하는 모습을 찾아온 이들이라면 쉬이 보았을 것이다.
[ 소문? ]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살아온 시간 길고, 있던 일들도 이젠 기억하는 이들 조금씩 사라질 즈음이다. 그 때문에 아직도 다른 이들에게서 그자가 그러겠어? 하는, 그러나 진짜 있던 일 몇 가지를 조금만 들춰보자.
어렸을 적에는 강하다는 요괴나 신령들을 찾아가 싸움을 걸곤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이야 저렇지만, 예전에는 그것만이 목적인 것처럼 온갖 것들 찾아가고 부딪혔다. 인간들의 방식으로 비유하자면 도장 깨기처럼 강한 이들을 이기고자 하였고 지면 상대가 슬슬 잊을 즈음에 찾아와 또 싸움을 걸곤 했다. 물으면 무작정 이기면 강해진 것이지 않겠냐던 작은 것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그만한 연배나 그 이상의 이들뿐이다. 지금은 그때는 치기 어렸다며 웃는 모습만 볼 수 있는.
…그래서 결과? …어땠더라……? 일단 낙화한 경험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다.
[ 그리고? ]
별다른 호불호를 보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별다른 불호를 뱉지 않는다. 실제로 딱히 크게 싫은 것이 없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울려 잘 살기도 하지만 성품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다 시간 만들어온 연과 마모는 어쩔 수 없기에 자연스레 평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상흔은 없는 편이다. 그럼 어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