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이怪异


만물에는 보는 눈이 있다.
또한 만물에는 듣는 귀도 있다.
모든 생명은 조화 안에서 잉태되었다.
그중 특히 자연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태어나는 존재를, 아주 오래 전부터 괴이라 칭하였다.
괴이는 그들의 탄생 원리에 따라 다시 두 부류로 나뉘었는데, 각각 신령과 요괴라 불리는 자들의 특징을 살피면 다음과 같았다.
자연의 힘에 지성이 있는 자들의 신앙이 모이면 새로이 신성을 가진 존재가 태어난다.
이들을 신령이라 하며, 기원이 된 신앙에 따라 성격과 힘의 유형이 달라진다. 신령은 태어난 곳에서 멀리까지 움직이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는 그들이 신앙 곁에서 머무르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신령은 공덕을 쌓아 신앙을 키우며 강해진다.
이는 신령이 태어난 곳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했다. 다만 신령은 천계에 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빠른 시일 내에 비승飛升해야 하는데, 만일 이를 거부하고 계속 인세에 머물 경우 서서히 힘을 잃어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따라서 인세에 머무르는 신령은 본신의 힘이 그리 크지 않거나 비승할 만큼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이다.
반면 인세에 머물 수 있는데도 신도가 사라진 신령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점점 신앙을 잃어가고, 가진 신앙을 모두 잃으면 신령이었던 자는 자연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요괴로 화하게 된다.
또한 신령과는 다르게 자연의 힘에만 기원을 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요괴이다.
본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이 모두 그렇듯 요괴는 자유롭고 변덕스런 성질을 가지기 쉬웠다. 그때문인지 요괴들은 유독 「호」와 신분을 자주 바꿨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하나의 「호」를 오랫동안 유지할 경우 신앙이 쌓일 가능성이 있고, 자칫하면 한 곳에 묶여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요괴의 주변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의 힘이 모여들어 뭉치게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나이 많은 요괴는 가진 힘도 그만큼 컸다. 다만 힘의 크기가 클수록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많은 간섭을 받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젊고 약할 때보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강력한 대요괴의 경우 제자를 육성하거나, 향락에 빠지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일이 잦았다.
신령과 요괴는 최소 삼백 해를 너끈히 채워 살았다.
인간에게 수명이란 타고나는 것이나 자연 혹은 신앙으로부터 힘을 얻는 존재들에게는 타고나는 수명이란 거의 무의미한 요소에 가까웠다.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모든 요소가 모여 그들의 수명을 이루므로, 여태껏 신령과 요괴의 최대 수명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또한 신령과 인간, 혹은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 혼혈이 종종 태어나는데, 이들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본래 가졌던 힘을 더욱 강화할 수는 있겠으나 천계에 들거나 완전한 신령 또는 요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혈의 경우 보통 이백 해에서 일천 해를 살며, 일천 해를 넘긴 혼혈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름과 호


본래 신령과 요괴는 근원으로부터 주어지는 이름을 하나씩 갖고 태어난다.
이는 소유자와 동일시되는 것으로, 이름을 부르고 숭상하면 신앙이 쌓이거나 주인이 그의 이름을 직접 새기면 영묘한 힘이 깃드는 등 「이름」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힘의 매개이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근원을 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근원을 안다면 약점을 알아차리기도 쉬운 법, 그러므로 신령과 요괴는 보통 이명을 사용하곤 했다. 보통 「호」라 부르는 이명은 비록 주인의 존재를 가리우나 그를 가리키는 이정표임은 변함이 없었고, 따라서 「호」를 사용하여도 신앙은 얼마든지 쌓을 수 있었다.
혼혈 역시 근원의 이름을 타고나므로 본래 주어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따라서 근원을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 호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제菩提


이것은 평생의 벗이다
삶과 죽음, 희로애락을 함께하니 이보다 더 가까울 수 없으리라.
기운이 뭉쳐 핵이 태어날 때, 그 곁에서 함께 탄생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주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이 형태를 바꾸며 주인과 함께 성장하고, 주인이 완전한 안식에 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흩어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물건이다. 먼 옛날의 신령과 요괴는 자신들의 반쪽과도 같은 이것을 가리켜 보제라고 칭하였으니, 그 뜻인 즉 지혜와 지식으로 향하는 길을 함께 걷는 자라는 뜻이었다.
보제는 주인 된 자의 힘을 담아두는 도구인 동시에 주변의 기운을 끌어당겨 축적하는 역할도 했는데, 이를 잘 활용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큰 힘을 쌓을 수 있었다. 게다가 환력을 받은 자의 경우 마수를 질서로 되돌릴 때에도 보제에 기운이 쌓였는데, 보제의 힘이란 곧 주인의 힘이므로 마수를 토벌하는 신령과 요괴가 점차 강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룡이 첫 호중천을 불러들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니, 환력을 가졌으며 더욱 높은 경지를 희망하는 자들이 적극적으로 마수의 토벌에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낙화落和


자연의 기운, 혹은 신앙이 한 존재로 화할 때에는 반드시 중심에 핵이 들어차게 되는데, 그들에게 죽음이란 바로 이 핵이 스러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과도 같았다.
따라서 신령과 요괴에게는 죽음과 삶의 경계가 몹시 모호했다. 완전한 죽음이 아니라면 죽음이라 부르지 않고 낙화라 부르는 데에서도 죽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드러났다.
보통 낙화하였을 경우 핵이 온전하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혼과 육신을 다시 복구할 수 있었고, 이 특성이야말로 그들을 오랜 세월동안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소였다. 다만 한 번 모였던 기운이 흩어졌다가 모이는 과정에서는 얼마간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낙화하기 전에는 이후 무엇을 잃을지, 혹은 무엇이 새로이 생겨날지 알 수가 없었다. 때로는 낙화 전 입은 상처가 얼마간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으니 그 모든 것이 조화의 뜻이라 할만 했다.
인간의 피가 섞인 혼혈이라 할지라도 핵이 존재하기 때문에 얼마간은 죽음에서 자유로운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이라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해도 낙화를 꺼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일까, 혼혈 중에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낙화를 한 번도 겪지 않는 자의 수가 제법 많았다.

